“봉수 동시대 존재했다면 형태 갚아야” vs “전쟁기 급하게 만들면 형태 다를 수 있어”
“입지상 장수 대적골 제철 생산 어려워” vs “주변 삼국시대 토기편 적지않게 수습”
“반파는 대가야” vs “장수에 존재했던 독자세력"
“‘전북가야’, ‘장수가야’조어 신중해야…역사적 실체로 오해하는 경우 있어”
백제학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지난 4일 개최한 학회에서는 전북 가야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사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어졌다.
참여한 학자들이 논쟁을 벌인 주제는 봉수·제철유적의 시기규명 문제, 반파국을 장수지역에 비정하는 견해 등이다. 또 장수가야, 김해가야, 함안가야 등 ‘행정지명+가야’ 식 작명법의 적절성을 놓고도 논의가 이뤄졌다.
이를 부분별로 정리한다.
봉수
최근까지 전북 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117개 봉수 조성시기와 형태가 주된 논쟁거리였다. 김주흥 LH밀양사업단장은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국에 있는 봉수는 44개이며, 각 봉수당 거리는 11.6km”라며 “가야시대에 110여 개의 봉수를 운영했다는 게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삼국, 고려, 조선 등 다양한 시기에 분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권오영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본서기에 나온 데로, 반파가 514년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단기간에 봉화를 세웠다면 구조적인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면서 “게다가 남해안 쪽에도 분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명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호남 동부권은 산악지대로 봉화를 조밀하게 배치할 수밖에 없다”며 “대지에 설치한 조선시대 봉화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이어 “주변국가와 전쟁을 벌일 때 급조해서 만들다보니 형태가 다를 수 있다”면서 “지형과 환경의 특수성으로 쓰이는 재료도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곽장근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당시 봉화 양식은 토축형, 암반형, 석축형으로 다양하다”며 “봉화로도 복원을 했는데 섬진강 유역에도 배치된 흔적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제철
제철은 입지 문제가 화두였다. 이남규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입지상의 문제로 장수 대적골과 같은 산간에서는 제철이 생산되긴 힘들다”며 “고대시기 같은 경우 유통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원, 장수 구릉지대에 슬래그가 분포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제철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상민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부 교수는 “현재까지 대적골에 나온 제철 중에 삼국시대 것이 확인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 연구원은 “주변을 지표조사 했을 때 삼국시대 토기편이 적지 않게 수습됐다”고 주장했다.
곽 교수는 “대적골에서 여러 차례 발굴한 결과 통일신라 문화층까지 접근했다”며 “그 아래 선대 문화층이 있기 때문에 발굴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 교수는 “전국 여러 기관에서 제철유구, 유물을 발굴한 결과를 발표한 보고서에 오류와 시행착오가 드러난다”며 “유적 발굴을 너무 서두르지 말고 발굴역량을 강화한 뒤 시행해야 문제가 안 생긴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제철고고학은 40여 년 간 고고학·금속공학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에게도 어렵고 미해결 분야가 많다”고 부연했다.
반파의 대가야설 vs 반파의 장수가야설
반파를 대가야라고 보는 기존 통설과 장수에 존재하는 독자세력으로 보는 새로운 학설도 충돌했다.
이날 학회에 참여한 학자 대부분은 △반파는 백제가 대가야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격상을 낮추기 위해 부른 용어라는 점 △반파가 성을 지은 ‘자탄’은 경남 거창, ‘대사’는 경남 진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고령토기의 확산지점이 넓다는 점 △일본서기가 삼국지의 문헌 내용을 윤색했다는 점 등을 들어, 반파는 대가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에 힘을 실었다.
반면 곽 교수는 “반파의 위치 비정은 엄연히 역사 고고학의 범주”라며 “전북 동부에서 발견된 110여곳 8갈래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군 장계분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 ‘일본서기’에 반파가 513년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백제와 전쟁을 벌일 때 봉후 기록이 나오는 데, 그 물증이 전북 동부지역 봉화망”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정재윤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반파 장수 독자세력’ 이론에 대한 근거를 고고학적 자료인 봉화뿐만 아니라 문헌사료인 ‘일본서기’로도 들고 있다”며 “일본서기의 문제점이 제기된 이상 논리보강이 필요하다”고 재반박했다.
행정지명에 가야라는 고유명사를 붙이는 조어문제도 제기됐다.
권 교수는 “장수가야, 김해가야, 함안가야라는 용어는 참 어색하다”면서 “예컨대 ‘전북가야’라는 표현은 전북 전체의 역사적 정체성을 오도할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병남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지역 사회와 일부 지역민 사이에서는 ‘행정지명+가야’를 연결한 조어를 실체로 받아들이는 현상도 있었다”며 “학계 바깥의 사회에서는 검증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좀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언
검증을 통한 논리보강과 새로운 시각으로의 전환이 촉구됐다.
권 교수는 “장수 가야 세력과 관련해서 봉수·봉화뿐만 아니라 국가체제의 상징인 산성, 왕궁, 왕릉, 수취체제 창고를 발굴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영식 인제대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는 “정치체를 놓고 중심과 변두리라는 등식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며“장수와 진안일대, 남원 운봉고원에 존재했던 정치체의 자율적 발전론에 무게를 두고 연구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곽 교수는 “이제 고고학적인 유물과 유적 발굴을 시작한 단계”라며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간, 학제간 융복합 발굴과 연구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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