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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제작동기…신천학살 아니야”

우석대학교(총장 남천현, 이사장 서창훈) 동아시아평화연구소(소장 서승)가 22일 전주시 금암동 우석빌딩 화하관에서 개최한 ‘6·25 전쟁과 이북지역 민간인 학살’ 학술 심포지엄에서 한국 전쟁시기 북한 신천학살 사건의 주체를 미국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유물, 국제여성민주연맹의 조사를 토대로 보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난 좌우 간의 이념대립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작품의 제작동기 역시 신천학살 사건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서창훈 우석학원 이사장과 남천현 우석대학교 총장, 장영달 우석대학교 명예총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 등 유관단체와 학계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신천군 학살…우파·좌파 사상대립 결과물”

한국전쟁시기 발생한 신천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손님> (2001)을 발표한 황석영 작가는 사전 동영상 발제를 통해 해당 사건을 “기독교 우파와 마르크스주의 좌파 간 사상대립이 폭력화 된 결과물”로 해석했다.

앞서 그는 북한을 다녀온 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소설을 썼고, 여기서 학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손님’(기독교 우파, 마르크스주의 좌파)으로 형상화했다.

황 작가는 “(1989년) 방북했을 때, 북한의 황해도 신천에는 ‘미제학살기념박물관’이 있었다”며 “신천 양민학살 사건을 일으킨 주체를 미국으로 보고, 이를 고발하기 위해 세운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뉴욕에 체류하면서 어느 목사를 만나 그의 소년 시절 목격담을 듣고서 여러 가지 의문이 풀렸다”고 강조했다.

황 작가는 “그 끔찍한 학살은 우리들끼리 저질렀다는 게 진실”이라며 “배경은 계급적 유산이 약한 북한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두 가지 관념 모두를 개화로 받아들였던 탓”이라고 했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제작 동기…신천학살로 볼 수 없어”

한성훈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신천박물관과 한국에서의 학살-우익 치안대와 미군 그리고 피카소’ 발제를 통해 “신천에서 일어난 학살을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 제작하는 동기로 볼 수 없다”며 “피카소는 학살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1950년 9월,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한국전쟁을 고발하는 작품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듬해 1월 18일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카소의 작품은 당시 좌파 쪽으로 기울어져있던 지식인들의 감정과 일치했다”고 부연했다.

한 교수는 신천학살에 대한 실증적인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신천학살의 가해자를 미군으로 특정하는 것은 다른 맥락에서 짚어봐야 한다”며 “신천박물관 전시실에는 진열된 총기류에는 ‘한청(대한청년단)’, ‘치안대’ 글자가 적혀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천학살은 우익치안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천박물관의 전시내용과 구성이 가진 의도도 분석했다. 그는 “노동당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며 “이들은 박물관을 통해 인민들의 반미감정을 고양하고 일반화시키고자 했다”고 했다.

 

“국제민주여성연맹 조사 내용 주목해야”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는 ‘한국전쟁기 국제민주여성연맹의 북한지역 조사와 신천학살’ 발제를 통해 “국제민주여성연맹이 조사 당시 북한사람들이 증언한 내용에 의구심을 가진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민주여성연맹은 1951년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17개국 여성이 모여 한국전쟁의 참상을 조사하기 위해 꾸린 단체다. 이들은 학살사건이 있던 신천을 비롯한 북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쟁의 참상과 증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김 교수는 “국제민주여성연맹은 학살가해자로 ‘미군’ 혹은 ‘미군 통제하의 한국군’으로만 지목되는 상황에 의구심을 제기했다”며 “나아가 실제 현장 대기 증언자들이 사전에 지침을 받았을 가능성까지 거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해도 지역 내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과 가진 무작위 인터뷰에서는 우익치안대의 존재까지 억제되진 못했다”고 했다.

이어 “연맹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으로 북한 최고위급 인사나 조선인 통역관을 지목했다”며 “이들은 북한 정부의 지시 하에 일괄적으로 정보를 왜곡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우익치안대의 존재를 감춰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전쟁이전 인민의 확고한 지지위에 정권이 수립됐다고 선전한 상황에서 유혈사태를 주도했다는 사실은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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