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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개막공연…범은 자꾸 내려오고, 제비는 해마다 날아온다

전주세계소리축제 20주년의 의미
곽병창(극작가, 우석대 교수, 2004~2007 총감독)

전주세계초리축제 개막공연 모습.
전주세계초리축제 개막공연 모습.

범이 내려온다. 어린 소리꾼들이 되살려낸 범이 ‘송림 깊은 곳을 벗어나서’ 모악당 무대 위를 다시 거닌다. 교향악단과 국악단 서른 명이 모두 어린이들이다. 소리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떼창은 관(管)과 현(絃)을 모두 뚫고도 남을 만큼 맑고 높다. 저 비스듬한 붙임새의 엇모리는 이제 세계인의 감각세포 ‘끝 끄터리’까지 쉽게도 들쑤셔놓는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어언 스무 살이다. 조소녀, 지성자, 김일구, 안숙선 등 이십 년을 되돌아보는 명인들의 목소리에는 짙은 감회와 자부심, ‘다시 근원을 찾아가려는’ (Re;Origin) 의지가 가득하다. 장인숙, 이항윤, 조상훈, 김세미, 방수미, 박애리, 정상희, 이제는 중견이 된 소리판의 기둥들이다. 조세린, 정보권, 이정인, 박동석, 정이안까지, 이 무대와 판에서 성장한 젊은 예인들, 그리고 곽풍영, 박진희, 주영광, 소리천사를 비롯한 수많은 스탭들의 표정에도, 영원한 응원단장 윤중강, 든든한 뒷배 최동현과 국내외 여러 평론가들의 덕담에도 고마움과 기대가 넘쳐난다. 아, 소리축제가 이 스무 해 동안 해낸 일들은 조선 호랑이 수천 마리가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타고 어흥 어흥 내려오는 일과 견줄 만하다.

전주세계초리축제 개막공연 모습.
전주세계초리축제 개막공연 모습.

판소리라는 장르는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길어야 삼백 년쯤 되는 기간에, 사람의 목소리 하나로, 계층과 장르, 지역을 가로질러서 온 세상을 들썩이게 할 음악적 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져온 당대 민중들의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명창들의 부단한 수련, 그리고 주변 장르와의 소통과 포용력 덕이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의 진정한 근원(Origin)은 ‘언제나 새로운 생각과 실천, 공존과 포용의 정신’이다. 그렇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새로운 소리들의 발신지이자 한 복판 자리에 판소리가 있다.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월드뮤직 축제’라는 정통성은 그렇게 확인되었고 20년 동안 소리축제는 그 길 위에서 흔들림 없이 성장해온 것이다. 월드뮤직 축제의 전범인 워매들레이드(WOMADelaide)에 견줄 만한 축제라는 찰리 크루이즈만의 찬사에, 워매드의 토마스 브루만 총감독과 ‘Sori-WOMAD’ 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2005년 봄의 애들레이드 보태닉 파크 잔디밭이 떠오른다. 당대 명창 세자리아 에보라와 안숙선 위원장이 한 무대에 서던 기억도 그 곁에 있다.

소리의 전당을 둘러싼 건지산의 기운도, 한옥마을과 거리 구석구석의 흥청거림도 다시 스무 해, 이백 해를 넘어 영원하기를-.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권삼득 더늠으로 설렁설렁 돌아오는 강남제비들이랑, 백두대간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는 저 범들도, 그 걸음 멈추지 말고 세상 구석구석 두루 돌며 전주가 보내는 잔치의 소식을 자꾸 자꾸 실어 나르기를-.

 

 

곽병창은...

전주에서 극작, 연출가, 축제감독으로 살아왔다. 사십대의 한복판에 소리축제와 더불어 지낸 것을 큰 행운이라 여기며, 여전히 소리축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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