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루루루 뚜루루루 …….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열차는 정리 된 책장의 책처럼 제자리에 착착 멈추었어. 그러고는 입을 벌려 몇 안 되는 승객을 토해놓기가 바쁘게 또 몇 안 되는 승객을 빨아들이고 꽁무니를 빼 버렸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발길이 뜸 한 곳인데 열차가 지나간 역사는 정말 조용하고 쓸쓸했어.
나는 역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비추며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는 보안카메라야. 이 역사 안에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어. 내가 이 역에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크던지 어깨가 아주 무거웠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잡는데 내 힘이 꼭 필요 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로 떠나갔어. 이 역에도 점점 승객 수가 줄어들었지. 오고 가는 사람이 적은 이 역에서 난 정말 할 일이 없어.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던지 하품을 하다가 깜빡 졸아 버린 적도 있지 뭐야. 게다가 요즘은 나이 탓인지 자주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아.
대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오후 4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역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누구랑 약속이라도 한 걸까? 손목에 차고 있는 키즈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어.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열차는 긴 꼬리를 달고 의기양양하게 역에 도착했지만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그 아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어. 왜 이번 열차에 타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는 걸까? 열차가 부리나케 역을 빠져나가고 있지만 아이는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어. 여전히 키즈폰으로 시간만 보고 또 보았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아이는 역에 왔어. 가방을 메고 오는 걸 보니 학교가 끝나면 바로 여기로 오는 것 같았어. 여자아이가 가방을 열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가방 안쪽에 하나 초등학교 3학년 1반 정기쁨 이라고 쓰여 있었어. 아이의 이름이 기쁨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지. 귀여운 얼굴이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어. 그런데 하나초등학교를 역사 안에 있는 지도로 찾아보니 꽤 먼 거리에 있는 거야. 나는 조금씩 기쁨이에게 관심이 갔어. 왜 저 아이는 열차를 타러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 먼 곳까지 매일 오는 것일까? 나의 궁금증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갔어.
그날도 누군가를 아니면 무언가를 열심히 기다리는 기쁨이가 보였어. 심심한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그림도 그리고 과자도 먹고. 그러다 열차 들어올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봐. 기쁨이도 내가 보는 걸 알아차린 걸까? 맨 처음에는 기쁨이가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내가 아니라 안내방송 소리가 나는 내 옆의 스피커씨를 쳐다보는 거더라고.
“이보시오. 스피커씨, 저기 저 아이가 매일 와서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스피커씨를 쳐다보는데 혹시 까닭을 아시오?”
“......”
궁금해서 물어는 봤지만 스피커씨가 대답을 해줄리 없었어. 이 역사가 생기고 스피커씨와 내가 설치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말에 대답을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지금은 구식 기계가 된 카메라와 스피커일 뿐이지만 우리도 한때는 최신식이라 불릴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반짝이는 렌즈에 지금처럼 깜빡깜빡 잊어버리지도 않고 앞이 흐릿해 보이지도 않았지. 스피커씨도 광채 나는 진한 검정에 지금처럼 잡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깨끗하고 낭랑한 목소리였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다 흰 눈 같은 먼지를 켜켜이 뒤집어쓰고 초라해졌지. 한때는 우리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하룻밤 꿈만 같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 한번 제대로 해 주지 않는 스피커씨한테 서운해지려 해.
기쁨이가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어. 목소리가 크고 흥분한 걸 보니 전화 건 사람이 잔뜩 화가 났나 봐.
“정기쁨, 너 어디야? 매일 학원 간다더니 어딜 쏘다녔던 거야?”
“친구 집에서 ... ... .”
그때 기쁨이의 거짓말을 꾸짖기라도 하듯 다음 열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역 안에 울려 퍼졌어.
“너, 또 거기 간 거야? 엄마가 거기 가지 말랬지?”
전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했어. 동시에 기쁨이의 얼굴도 붉어지고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지.
“.......”
“정기쁨, 왜 대답이 없어? 엄마가 금방 갈 테니까 꼼짝 말고 기다려!”
엄마와 통화를 마친 기쁨이의 어깨가 들썩였어. 이럴 때 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어깨라도 토닥여 줄 수 있다면. 난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구닥다리 카메라일 뿐 이었어.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급한 걸음으로 후다닥 계단으로 내려왔어. 그러더니 기쁨이를 와락 끌어안았어. 둘은 한 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어. 그런데, 어? 저 얼굴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나는 흐릿해진 기억을 되짚어봤어.
내가 기쁨이 엄마를 처음 본 날도 기쁨이 엄마는 울고 있었어. 얼마나 울었던지 기운이 없어서 울다 쓰러 지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어. 기쁨이 엄마가 울게 된 이유는 전날 밤 사고 때문이었지. 우리 역에 역무원들은 낮과 밤으로 나누어 번갈아 일해.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그날은 부역장님이 일하는 밤이었어. 마지막 열차만을 남겨둔 참이었지. 부역장님은 열차를 맞이하기 위해 플랫폼에 서있었어. 보통 그 시간엔 아무도 없기 마련인데 그날은 어떤 남자 승객 하나가 서 있었어. 그런데 자꾸 몸을 비틀비틀 했어.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철로로 떨어져 버렸어. 그때 부역장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철로로 뛰어 내려갔어. 분명 방금 전에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을 들었을 텐데 말이야. 서둘러 술 취한 승객을 철로 밖으로 밀어냈어. 곧바로 열차가 들어오고 부역장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어. 난 그때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다음날 사고 현장인 역에 찾아온 기쁨이 엄마는 울고 또 울었어.
그날 이후에 기쁨이 엄마는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았어. 역에서 일 년에 한번 부역장님을 위해 하얀 국화꽃을 준비하고 추모를 하지만 기쁨이 엄마는 한 번도 오지 않았어.
부역장님은 우리 역 목소리 미남이었어. 나도 역무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아는 건데, 부역장님의 원래 꿈이 성우였는데 집안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고 해. 그래서 우리 역 안내방송을 부역장님 목소리로 녹음해서 쓰고 있었어. 다른 역들은 모두 디지털 안내방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역만 아직도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야.
기쁨이가 바로 정강훈 부역장님의 딸이었구나. 이제야 퍼즐조각들이 맞춰지는 것 같았어. 아빠 목소리를 들으러 엄마 몰래 매일 같이 여길 온 거였구나. 나는 기쁨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는 카메라일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어. 한 가지 생각을 깊이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 지끈. 이런, 눈만 잠깐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잤나 봐. 카메라가 꺼졌다고 난리가 났어.
“요즘 자꾸 화면이 자꾸 꺼지던데 오늘은 아예 먹통이네요.”
“너무 오래돼서 그렇지 뭐야. 또 오작동하면 카메라를 교체해야겠는 걸........”
젊은 역무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은근 부아가 치밀어. 내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갖다 버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 요즘 사람들은 고쳐 쓰는 일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고향 같은 이곳에서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때 번뜩 기쁨이를 도울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내일도 또 오겠거니 기쁨이를 기다렸어. 그런데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간 후로 기쁨이는 오지 않았어. 정말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조금씩 눈앞이 흐려지고 자꾸만 졸린 데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자꾸만 급해졌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만 하던 어느 날. 드디어 기쁨이가 왔어. 나는 너무 반갑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어. 기쁨이는 어디가 아팠던 건지 조금은 야윈 얼굴이었어. 작아진 어깨에 달팽이집 같은 큰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주황색 의자에 앉았어. 기쁨이는 오늘도 열차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어. 그러더니 안내방송이 나오자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 거렸어.
“아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하고 눈을 질끈 감았어. 그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눈을 다시 떴어. 역사 안의 모든 카메라에 기쁨이가 나오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계획이야. 사무실에서는 또 소란이 일었지.
“아니, 이게 뭐야! 또 고장인 건가? 아주 멋대로 잖아!”
지난번에 한 번 더 고장 나면 카메라를 바꿔달아 버리자던 젊은 역무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왜! 무슨 일인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어. 모니터 속 기쁨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
“역장님 오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보안 카메라가 말썽이더니 오늘은 아예 이렇게 한곳만 비춘 채 먹통입니다. 아무래도 새 걸로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울고 있지?”
“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장님의 지시로 역무원들이 기쁨이한테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어.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카메라들을 정상으로 되돌렸어.
잠시 후 젊은 역무원 뒤로 두리번거리며 기쁨이가 따라들어 왔어. 역장님은 기쁨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어. 기쁨이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대화를 마친 역장님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기쁨아, 아빠 목소리 여기에 담았으니까 언제든지 들으렴.”
“여기서 정말 울 아빠 목소리가 나와요?”
역장님이 기쁨이 손에 작은 이동식 메모리 장치를 쥐어주자, 기쁨이는 봄꽃 마냥 살포시 웃었어. 나도 덩달아 너무 기뻤어. 카메라에 눈물샘이 있었다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스피커씨한테 말을 걸었어.
“저기, 나 오늘 좀 멋지지 않았소?”
“.......”
“마지막으로 잘 가라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오?”
“치익 치지, 지직…….”
/박영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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