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미국 크리스티에서 비플(Beeple)의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이 6천 93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무대에 처음 오른 NFT 작품. 5,000개의 디지털 이미지 파일이 하나로 합쳐진 ‘조각 콜라주’ 하나로 비플은 현존 작가 중 최고 경매가 3위를 갱신했다.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디지털 세상을 접한지 벌써 3년차에 접어들면서 나 역시도 낯설었던 비대면 일상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출근 후 자연스럽게 줌(ZOOM)에 접속하고, 16분할된 화면으로 사람들과 화상 미팅을 진행하며 바야흐로 조각의 시대가 찾아왔음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조각 생활에 익숙해진 건 바이러스 대유행에 따라 대학을 필두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작년부터 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 교육사업인 ‘팔복예술대학’ 역시 올해부터는 온-오프라인 교육과정을 대폭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20대부터 60대의 예술인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줌에 접속해 고대 민주주의와 예술에 대한 의견울 나누고, 포트폴리오를 공유한다. 요즘은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를 찾는 대신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켜고 화면공유를 하며 서로가 공부하는 모습을 감시하는, 이른바 ‘유비쿼터스 감옥’과 같은 새로운 문화도 등장했다.
조각의 유행은 미술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술시장 전문 컨설팅 기관인 아트 이코노믹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고액 컬렉터의 약 65%를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아트테크의 연령층이 낮아진 배경에는 공동구매. 즉 ‘조각 투자’가 있다. 플랫폼이 소유한 작품의 지분을 구매하고, 조각 자체를 거래하거나 작품이 향후 경매를 통해 매각되면 수수료를 제외한 차익을 지분에 따라 나눠 받는 구조이다. 온라인 쇼핑을 하듯이 커피 한 잔 값으로 내 취향의 ‘앤디 워홀’‘김환기’와 같은 거장들의 조각 작품 갤러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방형의 사진 조각이 빼곡하게 담긴 인스타그램의 사용 방식도 몇 년 전과는 살짝 달라진 모습이다. 줍다와 조깅의 합성어인 줍깅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면장갑, 집게, 비닐봉지를 들고 등하굣길과 출퇴근길을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거리의 미화원들이 등장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인증샷이 수없이 올라오고, 상품을 구매하면 후원으로 연결되는 기부 굿즈, 후원금을 내고 마라톤에 참여한 후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기부 마라톤도 유행이다. 이런 활동들은 단순한 취미에서 끝나지 않고 #해시태그를 달아 불특정 다수를 독려하는 선한 오지랖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SNS는 이제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공간이 아닌 내 일상과 소비에서 드러나는 가치관의 ‘미닝 아웃(Meaning Out)’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전시한다며 소위 ‘관종’이라 손가락질 받는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이처럼 조각의 생산자가 되기도 소비자가 되기도 하면서 거리낌 없이 나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뉴노멀의 시대에서 뚜렷한 색깔, 개성 가득한 조각들을 모아 각자만의 <매일: 첫 5000일>과 같은 거대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어떨까?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이수진 주임은 사단법인 무형문화연구원에서 전주문화재단 팔복예술공장 기획운영팀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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