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눈이 100개나 달린 신화 속의 감시자 아르고스(Argos)도 한순간 그 많은 눈을 전부 감고 말았다. 그리고 이 거인은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잠깐의 방심이 불러온 비참한 종말이었고, 철통 감시망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제왕 제우스는 아내 헤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내연녀 이오를 암송아지로 변신시켰다. 이를 눈치 챈 헤라는 제우스에게 암송아지가 된 이오를 선물로 달라고 청해 자신의 심복인 아르고스에게 엄중 감시하도록 했다. 100개의 눈으로 사방을 보는 아르고스는 잘 때조차 눈을 다 감지 않는 타고난 감시자였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아들 헤르메스에게 명해 아르고스를 제거하도록 했다. 아르고스는 헤르메스의 피리 소리와 사랑이야기에 홀려 모든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헤르메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르고스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가애도기간이 종료됐다. 중단됐던 축제·행사가 속속 재개될 것이다. 그리고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면 이번 참사도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안전’이었다. 성난 민심에 당황한 정부는 국가혁신과 안전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고 재난안전시스템을 정비하면서 ‘대한민국 안전 대전환’을 추진했다. 국가 재난안전 컨트롤타워가 출범했고, 지자체에서도 조직개편을 통해 재난안전기구를 신설했다. 또 우리 사회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2015년부터 ‘국가안전대진단’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이없는 대형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국가 안전관리, 재난대비 시스템의 허점이 속속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떠들썩하게 되풀이해왔다. 무엇보다 소를 잃지 않도록 튼튼한 외양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튼튼한 외양간이 바로 안전의식이다. 안전의식은 국민성에서도 유래하지만 평소 안전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의해서 형성되는 후천적·습관적인 부분이 많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계속된 대형사고의 원인을 짚어가면 어김없이 인재(人災)로 귀결됐다. 시스템과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 미래의 흐름까지 예측해서 우리 사회 위험요인을 모두 대비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문제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현대 사회의 재난감시·안전관리 시스템은 ‘아르고스의 눈’에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아르고스처럼 한 순간 눈을 감아버리거나 눈을 뜨고도 방심한다면 모두 헛일이다.
아흔아홉 번의 헛걸음이 있더라도 한 번 있을지 모를 만약의 사태까지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투철한 안전의식이 사회체계와 국민의식에 녹아들어야 한다. 정부가 ‘대한민국 안전 대전환’을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이번에는 사회 시스템 정비보다 국민의식 전환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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