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답답하고 제 운명이 마치 갑옷을 두른 것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가장이라는 짐을 싣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나모 도르게 한숨을 내쉬곤 했다. 낯선 고장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울렁이던 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마음의 공허는 메꿔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뒤늦게 더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었음을 깨닫는다.
전직 ‘뉴요커’ 기자이던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심장을 두드리는 책이다. 제 결혼식을 열리기로 한 날, 형의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그날이 그의 운명의 변곡점이었다. 형을 잃고 내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 뒤 그 지점에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촉망받는 기자는 엉뚱하게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란 직장을 구해 이직한다. 미술관 한 모퉁이에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란 가장 단순한 일을 수행하는 직업이다. 미술관 경비원이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게 새로운 일터는 심리 치유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그곳은 속세와 단절된 고요한 피안이었던 곳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계기에 삶의 방식을 바꾸곤 한다. 새 직업을 찾는 시도는 가치의 위계와 자기 시간을 쓰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다. 기업가나 정치가도 변화와 혁신을 외친다. 한 기업 총수가 한 “자식과 마누라를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기업의 혁신이 얼마나 절실했던가를 환기시키는 발언이었다.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미래를 담보하는 위험한 투기일 테다.
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다움이 아닌 것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뭔가에서 벗어나는 것의 최종심급은 혁명이다.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에서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노래한다. 혁명은 고독하고 피(자기희생)가 요구되는 일임을 꿰뚫어 보았다. 혁명은 생이라는 자기의 유일한 자산을 통째로 들이미는 일임으로 두려움과 불안과 현기증을 부른다. 많은 이들이 혁명의 열망을 품지만 실행까지 끌고 가지 못한다. 시인은 혁명을 포기한 자에게 남는 것은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아는 마음의 공허뿐이라고 노래한다. 혁명에 실패하면 마음의 황폐함을 겪는다. 그 황폐한 마음은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그 중간에 엉거주춤한 채로 머무른다. 그 머무름은 ‘죽기에는 너무 생기가 넘치고 살기에는 너무나 죽어 있기’(한병철, ‘오늘날 혁명은 왜 어려운가) 때문에 생긴다.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이직은 자기 혁명의 한 방식이다. 뉴욕 한복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건너다보이는 사무실에서 커리어를 쌓던 한 젊은이가 뜻밖의 비극을 맞고 무기력에 빠진다. 그는 시간에 쫓기며 자기를 갈아 넣는 기자직을 버리고 경비원으로 전직하며 내면을 관조하는 고요함과 평화를 얻는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10년을 근무한 뒤 여행 가이드로 생계를 꾸리며 이 책을 써냈다. 상실과 치유의 서사를 담은 이 자전적 에세이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40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주체를 해체한 뒤 그걸 프로젝트로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운명이란 것도 증발해버린다. 자기 스스로 고용주이자 피고용자로 만드는 시대에는 자기에게 성과를 내라고 채찍질을 해댄다. 그들은 직장에 예속된 채로 업무를 반복하면서 자기 착취를 하는 것이다. 일에 매여 진저리를 치거나 한숨이나 내뱉고 산다면 이보다 더 딱한 처지는 없다.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삶이 따분하고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생을 헛되이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관습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게 자기 혁명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온몸으로 변화를 갈망하라. 자기 혁명을 위해 성큼 나아가라!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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