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소리예술공연, 전북곳곳서 도민에게 직접 공연 선봬
문화예술 향유 사업도 지역 곳곳서 공연 펼쳐
문화예술 지원 사업은 문화격차 간극 줄이는 큰 힘
△찾아가는 소리축제, 축제 현장과 다른 전하는 깊고 작은 감동
지난 4월 19일 군산예술의전당 로비, 할머니 한 분이 공연을 마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티에리 위예’를 와락 껴안았다.
“아이고~ 잘 봤어. 잘 봤어. 사진 좀 찍어줘요. 아유 어쩜 그리 잘해.”
파란눈의 연주자도 웃고,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도 함께 웃음을 터트린다. 지켜보는 이들의 웃음에는 ‘그 감동, 나도 이해한다.’는 공감이 담겨있었다.
그 할머니 관객이 평소 공연을 자주 보는 분인지, 루마니아 음악을 아는 클래식 애호가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감동을 누구보다 멋지게 표현한 관객이었다. 주름진 손으로 연주자의 손을 토닥이며,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손주를 보듯 애정 가득한 미소로 바라보는 할머니, 예술은 그렇게 할머님의 삶에 닿아 감동의 순간을 선물했다.
이 순간은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의 사업 중 하나인 ‘찾아가는 소리축제 군산편-루마니안 랩소디’ 현장에서 있던 일이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2015년부터 진행한 사업으로 전주에서 개최되는 소리축제의 일부 현장을 전북특별자치도 13개 시군에도 전하고자 시작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팬데믹 상황시 4개시군으로 축소 운영한 것을 제외하고, 매년 13개 시군을 부지런히 찾아가 도민을 만났다. 순창의 한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춤추며 즐거워하는 것을 처음봤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선유도 공연에서는 멀리있는 섬에서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 배를 타고 온 멋진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다. 고창에서는 사춘기 중고등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고, 장수에서는 해외 연주자들과 산서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깜짝 합동연주를 하며 한무대에 서기도 했다. 남원 김병종 미술관 공연에서 감동받은 관객은 전주 본축제 현장을 찾아주기도 했고, 임실의 폐교 위기의 학교 선생님은 내년에도 학교를 찾아달라 몇 번이나 당부를 한다, 이런 감동의 순간이 축적되어 찾아가는 소리축제 사업을 지속 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주어진 과제가 많다. 전북특별자치도민을 위한 문화예술 향유 저변확대,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다양한 예술교육, 본 축제 홍보와 모객 활동, 지역예술단체와의 협업 모색, 문화예술과 관광을 연계하는 콘텐츠 발굴 등 하나의 사업에 담긴 목적과 바람이 크고, 소리축제 본 축제와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전주 외 전북 13개 시군을 모두 순회하니 운영도 만만치 않다. 함께 협업할 수 있는 각 시군의 공연장소를 섭외하고 모두 답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상되는 관객의 성향과 장소에 맞는 콘텐츠를 선정하고, 공연을 위한 기술적인 여건을 준비하고, 사전 홍보와 모객, 현장 운영인력 배치 등 규모 차이만 있을 뿐 소리축제를 준비하는 여타의 과정이 대부분 실행되고 있다.
△<신나는 예술여행>을 비롯한 문화예술 향유 지원사업
찾아가는 소리축제와 같은 문화예술 향유 사업의 비슷한 형태는 2004년에 시작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의 ‘신나는 예술여행’이다. ‘신나는 예술여행’은 초기에는 복권기금을 활용한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으로 시작됐는데, 현재는 문화시설로부터 먼 거리에 거주하거나, 비용 부담 또는 군복무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이유로 문화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국민들에게 예술단체가 직접 찾아가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 단위 사업이니 예산도 높고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년, 군인 등 수혜 관객층도 다양하며, 장르 또한 공연, 문학, 시각, 연극, 다원예술 등 폭넓게 진행된다.
20년을 진행한 사업인 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예술단체가 ‘신나는 예술여행’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여러 현장 여건 속에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관객층을 만나는 경험과 레퍼토리 개발의 기회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약 14년 간 ‘신나는 예술여행’에 참여한 예술단체의 관계자는 본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성과 예술성에 대해 고민하고, 수혜 관객층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철저히 하길 당부하기도 한다. 문화예술을 많이 접할 수 없는 소외 지역을 찾아가기 때문에, 한번의 경험이 선입견을 심어 주거나, 문화예술 현장을 다시 찾지 않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준비된 관객을 만나는 공연보다 쉽지 않은 무대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소중한 가치와 의미가 있으니 예술가들은 다시 짐을 싸고 공연장 밖 관객을 만나기 위해 나선다.
△문화예술 향유 지원사업의 의미와 가치
서울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이의신 교수는 ‘신나는 예술여행’의 가치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향유를 통한 긍정적 삶의 변화’, ‘찾아가는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공정성 실현’, 그리고 ‘예술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선순환 고리’이다. 정리하자면 문화예술 향유 사업을 통해 국민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기본적인) 권리’를 누림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직접 ‘찾아가서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지리적·사회적·경제적 장벽을 낮추고 어느 국민이나 공평하게 예술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가(단체)들에게 작품을 발전시키고 유통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게 돕는 것을 본 지원사업의 미덕이자 핵심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찾아가는 소리축제를 비롯해 지역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향유 사업의 목적과 의미와도 연결된다.
전북특별자치도에는 서두에 소개한 ‘찾아가는 소리축제’ 외에도 문화예술 향유 지원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사업이 있겠지만 필자는 두 개의 공연 사업 - 전북문화관광재단(이하 ‘문화재단’)의 <청년문화예술 주문배달서비스>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소리전당’)의 <찾아가는 예술극장>사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칫 문화재단, 소리전당, 소리축제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찾아가는’, ‘배달’이라는 유사 의미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 사업 자체도 유사하다 오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사업은 참여 예술가와 수혜 관객, 사업운영 중점 사항에 차이가 있다. 먼저 문화재단 사업은 청년예술가 지원과 문화소외계층 지원사업을 결합한 형태이고, 소리전당은 자격요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비영리기관 문화기반시설이나 복지시설, 의료기관 등 공연 장소 공모를 선행한 뒤 공연 단체를 선정하는 절차로 운영된다. 문화향유라는 공통의 과제 위에 한 기관은 청년예술가를 중심에 두고, 다른 기관은 협업기관(장소)에 중심에 두고 있어 운영방식과 콘텐츠에 차이가 있다.
소리축제의 경우에는 차별성 있는 작품과 장소에 중심을 둔다. 소리축제만이 소개할 수 있는 해외민속음악을 들려주거나, 선생님과 학부모가 아이보다 더 좋아하는 어린이극을 초청하거나, 모두 함께 판소리를 배워보는 강의형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찾아간 장소도 다양하다. 파도치는 채석강 바위에서 명창의 수궁가를 선보이거나, 때로는 야외 미술 갤러리에서 소풍하듯, 군립도서관과 협업하여 소규모 마을축제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
△변화와 혁신으로 확장되는 문화예술 향유 경험의 축적
필자는 앞에서 거론한 문화재단, 소리전당, 소리축제 세 사업 모두 각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보태자면, 우리 지역 기관이 문화예술 향유 사업을 각각 차별성 있게 운영하는 것이 반갑고 자랑스러운 마음이다. 문화예술 향유 사업은 마치 경작해야 할 자갈밭, 진흙밭, 마른밭 등 열악한 곳에 찾아가 문화예술이라는 씨앗을 심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현대사회의 빠른 발전과 심한 경쟁과 인구와 재정 격차 등으로 인해 짐작하는 것보다 넓고 막막한 문화예술 사각지대를 마주하고 있다. 문화예술 향유를 지원하는 사업은 정답과 해결책 없이 넓어지고 있는 문화 격차를 붙들어 줄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 씨앗을 심는다고 금방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알고 있다. 모든 씨앗이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조금씩 반복적으로, 이 방법 혹은 저 방법, 정성과 경험이 더해지고 보태지면 그것을 거름 삼아 싹이 트고 꽃이 필 수 있다. 더욱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강하게 반복적으로 시도해야 싹틔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어떤 씨앗은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예술가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열성 마니아 관객이나 기획자가 되게 하고, 삶의 어려운 순간을 마주했을 때 치유 받는 방법을 터득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청년예술가들이 제조업 공장의 노동자를 찾는 일도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작은 노인복지회관으로 찾아가 흥겨운 노래를 선물하는 중견 가수도 좋은 예술가이며, 해외 공연시장에서 인정받은 유명 작품을 섬마을 작은 학교에서 선보이는 것도 무모한 일이 아닌 것이다. 모두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꽃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문화예술 향유가 축적되어 우리 삶에 감동으로 닿았을 때, 그 순간이 변화와 혁신으로 확장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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