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회째 맞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만드는 장터'취재기
일회용품 사용 제한, 다회용기로 장봐, 1만여명 참여
며칠째 이어지는 궂은 날씨가 하늘을 덮치기 전이던 지난 4일, 여름에 가깝던 더운 날씨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고, 어디든 연휴의 첫날을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이던 날이었다. 그 중 전주 팔복동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은 특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막바지 이팝나무 철길을 눈에 담기 위해 찾은 가족과 연인, 해외 유명 팝아트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나선 관객들, 그리고 ‘쓰레기 없는 비건 장터- 불모지장’을 찾은 시민들 때문이다.
푸릇푸릇한 팔복예술공장의 잔디 광장을 가로지르는 길에 마련된 장터. 햇수로 4년, 8회째를 맞은 ‘불모지장’은 축제 현장 어디서든 흔히 보이는 다른 플리마켓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쓰레기’가 없다는 것. 적당히 타협하며 줄이려는 노력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에 차별점이 있다. 전주의 유일한 ‘쓰레기 없는 장터’인 불모지장의 입구에서부터 ‘일회용품’의 반입 제한을 알리는 안내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날이 더워 테이크아웃으로 구매한 커피, 편의점에서 구매한 음료 등은 잠시 보관대에 맡겨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이 행사의 규칙이라 하니 따라 본 시민은 일회용품을 내려놓고 발을 들이는 순간,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판매 부스는 총 50여 개. 지구에 무해한 채식을 경험할 수 있는 식음료 부스뿐 아니라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업사이클 제품과 소품을 판매하는 모든 부스에서도 일회용기나 포장지를 찾아볼 수 없다. 시원한 생맥주는 다 먹고 반납하면 되는 전용 유리잔에 제공된다. 토마토와 호박 등 농산물은, 마트에서 구매하고 남은 양파망을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포장된다. 비건 빵과 음식은 시민들이 챙겨온 다회용기에 담기고, 지참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다회용기 대여 부스도 마련되어 있다. 5월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 사람들은 비닐포장과 막대 쓰레기가 발생하는 아이스크림 대신, 위쪽 껍질만 벗긴 오이 한 개씩을 들고 장터 구석구석을 거닌다. 현장에는 쓰레기통 자체가 비치돼 있지 않았으며, 판매자부터 불필요한 포장이나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가 발생할 일도 없다.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 짧은 행사에 1만여 명이 찾으며 ‘쓰레기 없는 장터’가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행사를 마친 후 주최 측이 수거한 보관대의 일부 일회용기 음료, 오이 꼭지 등의 쓰레기양은 5리터 종량제 봉투를 채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많은 인파가 몰려 복잡한 공간이었지만 ‘노 키즈’나 ‘노 펫’ 등 차별적 제한을 두지 않은 곳. 무해한 삶을 지향하는 비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버릇처럼 구매하고 버리던 일회용 쓰레기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불모지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장터’의 약자이다.
△150 명에서 4년 만에 1만 명으로.. 불모지장의 놀라운 성장
시작은 평범했다. 필요한 만큼의 식자재를 쓰레기 없이 구매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았다. 이에 같은 고민을 갖고 있던 평범한 전주 시민 몇몇이 머리를 맞댔다. 마트에선 ‘불가능’한 쓰레기 없는 장보기를 ‘우리가 실현해 보자’고. 그렇게 삼삼오오 모인 마음 맞는 시민들은 직장인으로서, 자영업자로서 본업을 유지하면서도 틈틈이 아이디어를 나누며 불모지장은 기획했다. 2020년 처음으로 열린 불모지장은 기획단 구성원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됐다. 10여 개의 농산물 부스.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도 기획단의 지인들이 다수였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고, 그렇게 불모지장은 ‘환경 불모지인 전주를 비옥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행사를 이어왔다. 연 1-2회씩 열리며 지속된 게 어언 4년.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참여 업체 규모도, 장터를 찾는 시민의 수도 계속 늘어갔다.
1회 때부터 불모지장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시민 박선 씨는 “예전에는 뜻 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제는 다회용기를 무료로 빌려주는 역할을 공기업(한국환경공단 전북환경본부) 등이 맡아준다든지 시민 주도 환경 운동의 확장성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는 의견이다. 또, “주최 측이 정한 규칙을 전반적으로 잘 따르는 시민들을 보며 앞으로도 많은 축제장이나 행사장이 공익을 위해 ‘쓰레기 없는’ 행사로 규정 짓고 규율을 정하면 누구나 방향성에 공감하며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겠냐”며 불모지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이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길 희망했다.
전주 동서학동에서 비건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 중인 허지현 씨는 2년 연속 판매 업체로 참여하고 있다. 일반 플리마켓에 참여하면 다른 부스에 비해 시민들의 관심이 저조해 빛을 발하지 못하기 십상인데 불모지장에서만큼은 쉴 새 없이 바빴다고 한다. “다른 데서는 비건이나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알리기도 무척 어렵고 한계가 분명 있는데. 불모지장에 오시는 분들은 관심이 있는 편이니까 실제 매출로도 이어진다”며 행사의 좋은 취지와 더불어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소규모 영세업자들의 판로가 확대되는 효과까지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길 건너 이팝나무 철길에서 열린 다른 플리마켓을 구경하다 불모지장에 들른 또다른 시민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며 “처음에는 일회용 반입 금지라는 규칙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공간 안 모든 사람이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게 놀랍다. 많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서 다회용기를 대여해 주니 생각보다 실천하기 쉬운, 의미 있는 경험이 된 것 같다”라며 쓰레기 없는 장터를 찾은 소감을 전했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푸르른 잔디밭에서 어른이며 아이며, 사람이며 동물이며 모두가 어우러져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비건 문화 공간. 기획단이 지향하는 불모지장의 모습이다. 기존의 불모지장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홍보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보고 오는 장소였다면, 올해는 황금연휴에 갖가지 행사가 겹치면서 평소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대거 ‘우연히’ 불모지장을 찾고 알게 되었다는 게 큰 변화이다. 기획자 몇몇이 머리를 맞대 마련한 행사가 별도의 후원이나 지원 없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고민도 늘었다. 기획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행사의 규모는 점점 커지니 장소 선정부터 운영 방식까지, 꼼꼼히 정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러 회의를 거쳐 다음 불모지장은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열릴 예정. 불모지장의 기획자 중 한 명인 서지석 씨는 불모지장의 목표와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위해서, 작은 실천을 격려하고, 비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소수의 시민들’이 모여 시작한 불모지장. 시민 주도의 노력이 이미 큰 물결을 만든 현시점에서 불모지장의 행보와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
목서윤 전주MBC 아나운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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