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로 확인된 유물과 고문헌으로 고증된 백제 사찰
유산에 대한 보다 적극적 정비와 전시방향 추진해야
'제석사지(帝釋寺地)' 행정구역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이다. 제석사지의 위치상 특성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형적 형태로 북쪽으로는 미륵산(彌勒山, 430m) 용화산(龍華山, 342m) 시대산(始大山, 229m)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미륵산과 용화산에서 발원한 옥룡천, 부상천, 왕궁천이 흐르는 하천 유역의 충적지와 낮은 구릉지에 안정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석사는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절이 모조리 불에 탔을 때 탑 아래 넣어두었던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과 불사리만은 보존되어 다시 절을 지은 후 보관했다고 한다.
탑터로 생각되는 지역에서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주목되는 점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고 전하는 왕궁평 성안의 석탑에서 발견한 유물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몇 안되는 백제 절터로서 문헌기록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폐허가 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 무왕대의 왕궁평 유적과의 관련성,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백제세계유산 왕궁리유적과는 불과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미륵사지, 익산 쌍릉, 익산 토성 등 백제와 관련한 굵직한 유적지가 모두 6km 이내에 인접해 있다.
1998년 5월 12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1993년부터 시작되어 8차에 걸쳐 시행된 시·발굴조사 결과의 반영이라 추측된다. 처음에는 사역중심부 중심으로 시굴조사를 시행하였는데 1탑 1금당의 백제의 전형적 가람형식이 확인되어 전면 발굴로 전환되었으며 막새 등 다수의 백제 관련 유물이 발굴되었다. 특히 이곳에서 발굴된 암막새는 백제 사찰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출토된 것이어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이라 하겠다.
더불어 제석사지는 물론 여러 학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 건립연대와 폐사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사찰로도 그 가치가 크다.
7세기 중국에서 불경을 기록한 문헌으로 1950년 초반 일본 사찰에서 발견된『관세음응험기』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은 현 익산지역으로 추정되는 지모밀지로 천도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제석정사를 축조하였는데 정관 13년(무왕 40년, 639년)에 뇌우로 화재가 발생하여 불당, 7층 부도, 회랑, 승방이 모두 소실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관세음응험기』가 정사가 아니고 다른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 기록의 신빙성 자체가 의심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제석사지 폐기유적지’가 인근에서 확인되었고, 이곳에서 다수의 소조상·연꽃무늬 수막새와 불탄 흔적이 있는 유물을 포함하여 305점의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제는 무왕의 제석사지 경영과 화재 관련 기록은 정설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제석사지는 탁월한 발굴 결과와 고문헌 기록의 고증을 통해 아직 규명되고 있지 않은 과거 백제의 위상과 천도 등의 주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주요 유적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현재 제석사지에 방문해보면 이 위대한 유적의 흔적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제석사지를 방문하려면 좁고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를 지나서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구 가옥을 몇 채 지나 석부재가 나란히 전시된 장소의 건너편 농작지 옆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승방지, 금당지, 목탑지, 중문 등의 건물지가 복토되어 잔디로 조성된 매우 익숙한 유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도착과 동시에 절터 발굴에서 발견된 석부재의 다양함과 넓게 경계된 사찰 영역표시, 목탑지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소나무와 심초석을 보면서 막연히 '이곳이 역사 유적지이고 옛 가람이였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제석사지에 대해 비교적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은 백제의 독특한 가람구조와 회랑터 그리고 목탑지와 연계한 금당지와 승방지를 찾아내고 비교적 발굴성과가 있다는 동쪽 회랑지와 그 너머에 있는 폐기유적을 확인할 수 있겠으나, 제석사지가 실제로 숨겨놓고 있는 놀라운 백제 건축기술은 현장에 가서도 안내판에 남아있는 사진으로 확인해야 한다.
실지로 제석사지 목탑지 심초석 밑에 숨겨져 있는 13m에 이르는 판축층은 왜 백제의 건축기술이 놀라운 지를 보여준다. 이는 작년 시행된 익산 쌍릉 재발굴에서도 느꼈던 경이로움이다.
물론 이 백제의 토층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열화나 경화 등의 훼손 없이 상세히 보여주면서 현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유적은 땅속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백제유산의 현재 상황을 계속 확인하는 것 같아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향후 제석사지 종합정비계획에서 기획한 여러 사업과 전시사업이 조속히 추진되어 백제사찰의 생생한 모습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영일 전북특별자치도 학예연구관(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추진단 파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