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문화유산은 미래유산, 건축자산 관리이슈
정부 근현대문화유산관련법 올해 9월 시행, 준비해야
△전주 미래유산 1호 종합경기장 철거의 의미
지난 4월 전주 종합경기장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미 작년에 야구장이 철거되었지만 주 경기장 건물은 종합경기장 부지에 있는 중심시설이자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민과 함께해온 근현대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주 경기장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전주 종합경기장은 1963년 전북도 최초로 전국체전을 개최한 장소로서 설립 과정에서 전 도민이 십시일반 모금에 동참하여 건립 자금을 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네 차례(44회, 61회, 72회, 84회)의 전국체전과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개최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도민체육대회’, ‘전주시민의날’, ‘풍남제’, ‘전주 대사습대회’, ‘전주 국제영화제’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축제, 체육대회 등을 개최한 전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도민들이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는 문화유산이다. 전주시에서는 이와 같은 경기장의 역사·문화·공동체 측면의 가치와 의미를 살리기 위해 2017년 전주 미래유산 1호로 지정하였다.
전주시에서 미래유산을 지정한 배경은 전주에 있는 한옥, 근·현대 건축물, 생활유산 등 문화유산들 중 대다수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거나 등록되지 못하여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에서 국가유산은 아니지만 미래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조사·발굴하여 보존·활용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절면철거식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한옥을 비롯한 근현대문화유산이 멸실되고 훼손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마을에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보전·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 미래유산 제도가 시작되었다. 「전주시 미래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전주시 미래유산은 근·현대 전주를 배경으로 다수 시민이 체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인물 또는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의 것으로 미래세대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즉, 시간적 범위는 근·현대 중심이고, 내용적 범위는 유형유산, 무형유산, 장소 및 경관까지 포괄하지만, 국가에서 지정·등록한 국가유산은 제외된다. 특히, 미래유산의 개념 중 중요한 점은 역사적 경험과 시민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전주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유산, 건축자산 등 근현대문화유산 관리 이슈와 문제
최근 전주 미래유산 제도의 원래 목적과 취지가 왜곡되고 변경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주시에서는 종합경기장 철거 절차를 진행하던 2023년 10월에 미래유산 1호의 명칭을 ‘종합경기장’에서 ‘종합경기장 터’로 변경하였다. ‘종합경기장 터’로 변경하더라도 미래유산으로는 남는다는 말인데, 합당치 않다. 철거를 쉽게 하기 위해 미래유산 보전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제도를 바꾼 것일 뿐이다. 다른 미래유산 역시 멸실되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전주 완산구 남노송동에 있는 비사벌초사(신석정 가옥)의 경우 신석정 시인이 1961년부터 1974년까지 거주했던 곳으로서 시인이 살았던 당시의 가옥구조와 정원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2017년 전주 미래유산 14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비사벌초사는 재개발정비구역 내 위치하여 철거될 위기를 겪었으나 다행히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정비계획에 존치부지로 남았다. 하지만, 향후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 다시 철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또한, 전주 덕진구 우아동3가에 있는 장재마을(전주 미래유산 11호)은 종이와 대나무로 우산을 제작하던 지우산 마을로서 전북 무형문화재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가 우산 제작 기술을 배운 마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유산 마을인 장재마을은 전주역세권 복합개발사업 계획으로 인해 향후 마을 자체가 소멸될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재개발정비구역 내 한옥 멸실·훼손 문제도 심각하다. 국책 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 국가한옥센터에서 발간한 '2013년 전국 한옥분포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시 관내 한옥으로 판정된 건축물은 총 2512채이고, 이중 48.0%에 해당하는 1206채가 재개발사업 등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구역 내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법정동별 한옥 분포 현황 조사 결과 중노송동(255채), 교동(189채), 남노송동(167채), 태평동(151채), 풍남동3가(117채) 순으로 한옥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한옥마을이 있는 풍남동과 교동을 제외한 중노송동, 남노송동, 태평동 등은 최근 재개발사업이 완료되었거나 사업추진이 진행중인 지역으로 다수의 한옥 건축물이 철거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동 보고서에서 한옥의 지붕, 외관 등의 상태를 판단하여 비교적 양호한 A급 한옥건축물 63채를 현황조사하고 아카이브하였는데, 이중 다수가 태평동 등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멸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 제정에 따른 근현대문화유산 보존·활용 과제
정부는 최근 근현대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작년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이하 근현대문화유산법)」을 제정하였고, 올해 9월 시행될 예정이다. 과거에는 50년 이상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만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관리할 수 있었으나 이번 법 제정을 통해 ‘예비문화유산’ 제도를 도입하여 50년 미만의 근현대문화유산 중 가치있는 유산에 대해서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하여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예비문화유산의 대상 및 범위는 전주 미래유산의 대상·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전주 미래유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기 지정된 전주 미래유산을 검토하여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현대문화유산법」에는 ‘근현대문화유산지구’를 지정하여 문화유산을 선·면단위로 보전·활용하기 위한 지원 근거가 마련되었다.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건축자산진흥구역’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 인근 역사도심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하여 한옥 등 건축자산과 미래유산을 비롯한 근현대문화유산을 지원·관리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재개발구역 내 한옥 멸실·훼손 문제에 대응하여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구역 내 한옥 현황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개발사업 추진 시 서울시 한옥은행 사례와 같이 공공에서 한옥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를 조성하는 등 한옥 등 건축자산에 대한 아카이빙 및 매입·보존·활용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
미국 지리학자인 이-푸 투안(Yi-Fu Tuan)은 ‘장소애(topophilia)’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집단의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의‘기억의 장소’라는 개념을 언급하였다. 위의 두 개념으로부터 근현대문화유산이자 미래유산으로서 종합경기장은 단순한 건조물이나 체육시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도민의 경험과 추억, 애정, 기억이 축적된 소중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경기장 내에 전시컨벤션센터를 어떻게 지을지 의견수렴을 받고 있는데, 질문내용과 순서가 좀 잘못된 것 같다. 구체적인 개발내용보다는 먼저 미래유산인 경기장을 어떻게 보전하고 활용할지 시민에게 묻고 사업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아직 행안부 중앙투자심사는 받지 못했고, 구체적인 계획과 설계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묻지도 않고 철거부터 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지금이라도 경기장 개발에 대한 충분한 숙의 토론과 의견수렴 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올해 하반기에 각종 행사 때문에 철거 공사를 중지한다고 하는데, 이 기간에 경기장을 오픈해서 시민들이 서로의 기억과 추억을 나누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종합경기장과 미래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장우연 독립연구자·전) 전주시 정책연구소 연구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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