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손 편지 써 본 지 까마득합니다. 받아본 지도 아슴하고요. 아직 파릇할 적, 위문편지를 숙제처럼 쓰기도 했었지요.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靑馬)의 시를 외우며 썼다가 찢어버린 밤 수북했고요.
하루 한두 번은 지나는 곳에 우체국이 있었습니다. 못 보고 아니 애써 안 보고 지나쳤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전화 말고 문자 말고 도란도란 편지 한 장 써 볼 일입니다. 만년필이 좋겠네요. 이제는 아득한 그대 말고, 내가 쓰고 내가 받아도 좋겠지요. 우체통이 빨간 이유는 세상에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 성도 싶네요.
계단에 앉아 프리지어 꽃다발은 못 건네봤어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못 들어봤어도 365일 열려있다는 우체국 문은 크고 넓습니다. 중양절에 갔다가 이듬해 삼짇날 봄소식을 물고 온다는 제비가 심벌마크네요. “우체국에 가면/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수익의 시 ‘우울한 샹송’을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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