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빠르다. 20~30대만 해도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무슨 대수인 양 신이 났는데, 요즘은 걱정 하나가 더 생기는 느낌이다. 어느 때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사실, 생활의 범주가 좁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인 나이를 생각할 때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한때는 내 애창곡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구서 세미나를 마치고 학회 사람들과 노래방에 왔는데, 언젠가 백 형이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 생각나지를 않아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회식 모임에서 내가 불렀던 그 노래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일부러 배웠는데, 막상 부르려니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노래가 가수 현진우가 부른 <빈손>이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한 이유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돌아갈 때는 빈손인 것, 호탕하게 웃으며 살다 구름처럼 가자는 내용의 노래다. 어쩌면 허무주의 노래 같기도 하지만 쾌락주의자나 낭만주의자 인생들이 좋아할 법한 노래다.
검은머리 하늘 닿는다. 잘난 사람아/이 넓은 땅이 보이지 않더냐/
검은 머리 땅을 닿는다. 못난사람아/저 푸른 하늘 보이지않더냐/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나도/돌아갈 땐 빈손인 것을/호탕하게 원없이 웃다가
으랏차차 세월을 넘기며/구름처럼 흘러들 가게나
마치 피안의 세계에서 세상살이를 다 굽어보는 전지전능하신 분이 나 방금 산에서 내려온 도사가 주는 가르침 같은 노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된다. 사인도 여러 가지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장도 있었고,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도 없을 것 같던 대그룹의 회장도 빌딩에서 투신을 했다.
정말 예쁘고 잘 나가던 대중스타들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직 대통령이 투신자살을 했을 때는 온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허무한 일이었다. 그래서 가수 최희준은 인생이란 잠깐 머물다 가는 '하숙생'이라 했고, 남진은 '빈지게' 같다고 했다. 뿐만아니라 인생은 '나그네'요 '미완성'이라고 노래한 가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빈손'이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늦가을, 낙엽이 뒹굴고 따뜻한 햇살이 그리워지는 때였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 타령이나 이별이 어떻고 아픔이 어쨌다는 등 신세타령이 대부분인데, 이 노래는 그렇지 않았다. 그 뒤 초등학교 동창 송년 모임을 앞두고 어떤 노래를 부를까 고민할 때가 있었다. 30대에 만나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열심히 살겠다고 세상풍파 다 겪으면서 살아온 친구들이다. 만날 때마다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또렷해지고, 살아온 세월보다 가야할 세월이 짧은 친구들, 문득 <빈손>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시기적으로도 잘 맞고 박자에 맞춰 노래하기도 좋고, 더 좋은 것은 신곡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2~3일 만에 노래를 익혀 이 노래를 불렀다. 느끼는 감정이 같아서인지 모두들 마음에 와 닿는 노래라며 "앵콜"을 연호하며 한 번만 더 부르라고 야단이었다.
그날 친구들과 많은 술을 마셨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여기저기서 "인생이 뭐 있어? 즐겁게 살자!"며 술잔을 수차례 부딪쳤다. 그리고 <빈손> 노랫말을 여러 번 되새겼다.
'있다고 잘나고 없다고 못나도 갈 땐 빈손인 것을, 호탕하게 원없이 웃다가 세월 따라 구름처럼 흘러들 가자구나~'
△백봉기 수필가는 군산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신문〉으로 등단, KBS프로듀서, 백제예술대, 호원대 외래교수, 현 전북문회장, 온글문학회장, 전북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다. 군산시민의장,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전북문학상, 새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수필집으로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외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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