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방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원래 책을 다루던 일을 했는지, 전에 하던 일과 관련이 있는지, 전공은 무엇인지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하고.
꿈으로 삼고 전공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원하던 학과에 진학했는데 내가 가진 재능이나 성향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들은 뭐든 대학만 가면 다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모두 미루고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찾아온 막막함은 해결할 방법을 몰랐다. 대학생활은 짧고, 다음은 취업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에 취약한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이든, 나는 어떤 일을 잘하든 상관없이 취업의 문만 통과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주어진 보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당연히 계속 부딪혔고 자아실현은 별개로 생각하자 싶어 일은 도구로 여겼다. 서른이 넘어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리 오래 해왔더라도 회사를 벗어나면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은 가짜노동에 가깝다. 내가 톱니바퀴가 아닌 일을 하면 똑같이 갈아 넣더라도 내 안에 무엇이라도 쌓이지 않을까.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지만 업으로 삼기에는 가장 뒤로 미루어 놓았던 것을 떠올렸다. 내내 책만 끼고 공부만 하던 사람이 가려고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길이기도 했다. 6개월간 핸드드립 전문가 과정을 마치고 커피 전문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건 말로만 들었지 처음 겪어 봤다. 책상머리에 앉아만 있던 내가 처음 겪은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처음 3개월 동안 커피에는 손도 못 댄 채 설거지와 서빙을 했다. 3개월만에 겨우 커피 제조를 하게 되었는데 수십종류가 넘는 커피 메뉴를 숙련된 동료 바리스타와 같은 품질로 만들어내는 일은 여태 해 온 일 중에 가장 힘들었다. 연습하고 평가받기를 수백 수천번 지나 이제 됐다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로 내가 내린 커피를 돈을 받고 팔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때, 남편에게 흐드러지게 자랑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어 돈까지 벌다니. 노동강도에 비하면 박봉이지만 출근길에도 퇴근하고 싶던 회사에 다닐 때와는 달리 새벽에 출근을 해도, 한밤중에 퇴근을 해도 좋았다. 내내 톱니바퀴같이 어디에 껴 있는지도 모르게 살던 나는 그제야 내 의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책방은 처음 카페에서 일을 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왕 삶을 바꾸기로 한 거, 좋아하는 것들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어쩌다 책방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카페에서 일을 했었는데요,’ 다음에 ‘책 읽기를 좋아해서요.’ 라고 대답한다. 이제야 책에 대한 애정을 밝히기는 새삼스럽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좋아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해 온 일은 사실 책 읽기다.
안 팔리면 내가 읽으려고 한다는 농담 뒤에는 사실 내가 잘해온 것,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삶을 꾸리려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제든 찾아오고 싶은 취향의 은신처, 소도시에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녹슬지 않는 커피 맛과 독서의 경험을 제공하며 오래오래 지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유새롬 작은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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