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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덕진연못 연지(蓮池)답게 관리해야

지난 6월 10일 단옷날에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이음이 주관한 2024 전주단오포럼이 '전주단오, 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와 전망'을 주제로 덕진연못 연화정도서관에서 열렸다. 발표는 필자가 덕진연못의 역사민속과 종교적 상징성을 맡았고, 김익두 교수(전북대 명예교수)가 단오절 풍남제 축제의 전승과 바람직한 미래를 맡았으며, 김경미 전주대 연구교수가 신문기사로 확인하는 관광키워드 시대별 덕진연못 풍경과 물맞이를 맡았다. 토론자로 위병기(전북일보 수석논설위원), 류영수(전주대사습청 관장), 송현석(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이 참석하였으며, 좌장은 유영대 고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필자는 발표에 앞서 풍남제를 49회째로 끝내고 50회부터 단오제로 치르기로 합의 결정하였는데, 단오제의 ‘제’가 사라지고 전주단오 명칭이 사용되었다고 밝혔다. 전주단오포럼 좌장을 맡은 유영대 교수는 전주단오제는 강릉단오제보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가치에서 월등히 앞서는데 단오제 수준에서 뒤떨어져 단오제의 면모를 갖추라고 당부하였다. 발표자들은 건지산지형도에 덕진연못의 자연생태는 건지산 도솔봉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조경단 앞에서 합수하여 연화천을 따라 덕진연못으로 내려오고, 덕진연못은 아흔아홉 골짜기(九十九谷)에서 지하수가 솟아날 정도로 수원이 풍부하여 덕진연못은 맑은물(淨水)이 넘실거렸다고 했다. 덕암마을 용궁각 앞 덕진교에는 연못물이 넘실거린다하여 무넘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 용궁각에서는 무녀들이 음력 4월초파일에 용왕제를 지내고, 무넘이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단오물맞이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었다. 발표자들은 덕진연못의 용왕굿과 기우제의 고려시대 기록을 제시하면서, 당시 전주목 장서기로 부임하였던 이규보(1168〜1241)가 저술한 <동국이상국집> 전주제용왕기우문에 덕진연못을 하늘못(天之澤)이라 하였고, 덕진용왕에게 기우제지냈던 내용을 소개하였다. 덕진연못의 역사는 고려중기까지 올라가고, 고려시대부터 천년 용왕제 기우제가 전승되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전주제성황치고문을 남겼다. 단옷날 전주의 주산인 성황산 성황사에서 성황제가 거행되었고, 덕진연못에서는 기우제와 단오물맞이가 관습화된 민속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덕진연못이 성지(聖池)에서 유원지로 전락하면서 연지(蓮池)가 공원으로 사용되면서 세속화되어 갔다. 1959년 단옷날을 시민의 날로 정하고 덕진연못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조선시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단오물맞이 사람들이 덕진연못에 몰렸었다. 그런데 건지산에서 내려오는 맑은물이 오폐수관으로 처리 손실되고, 덕진연못의 수원은 펌프로 퍼붓는 흐르지 못하는 고인 물은 썩어 탁해지고 냄새나면서 단오물맞이의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지금까지 건지산 빗물(雨水)을 덕진연못으로 끌어온다고 수백억원을 들여 공사했지만 시민세금만 낭비하고 말았다. 2024년 전주단오포럼에서 발표자들과 토론자들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를 4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덕진연못의 수질개선이다. 건지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연화천 물길을 복구하면 덕진연못 수질은 해결되는데, 전주천 물을 끌어 올 엉뚱한 발상을 한다. 포크레인으로 연화천 도랑파기를 시작해보자. 둘째, 덕진공원 명칭을 덕진연못으로 변경하고 연지의 경관을 살려내야 한다. 조선시대 전주 선비들은 덕진연못의 경관을 찬탄하면서 수많은 한시를 남겼다. 연지는 성지다. 공원 대신에 명승지로 지정하자. 셋째, 연화정도서관을 이전 철거하자. 덕진연못은 원지도서형 정원의 섬(도서)을 확장하여 지은 한옥도서관으로 연못생태가 교란되어 황폐화되었다. 연화정도서관을 두고 덕진연못을 복원해 본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넷째, 단오물맞이 전통을 계승하자. 덕진연못 단오물맞이는 문화적 정체성이다. 1970년까지도 덕진연못의 물맞이 인파는 수천수만명이었다. 그래서 덕진연못에서 단오난장이 터졌었다. 덕진연못 단오물맞이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 /송화섭(전 중앙대 교수,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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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3 15:11

[세계 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⑤오횡묵 <고성부총쇄록> + 이헌영 <금번집략>

1894년 조선사회를 생생히 기록한 오횡묵의 <고성부총쇄록> △1900년대 말 사회상의 기록자 오횡묵 일기 때문에 최근 학계의 조명을 크게 받는 인물이 오횡묵(吳宖默 : 1834~1906)이다. 강원 경상 전라 충청 여러 도의 지방관으로 갖가지 일들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가 주목된 것이다. 고성부사로 재임할 때 쓴 <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은 갑오년 기록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들어갔다. 총쇄록은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의 기록”이란 뜻이지만 그것이 지금에는 이만저만한 보물이 아니다. 해당 시∙군에선 번역본을 내고, 그 기록을 활용해 문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 연구도 갈수록 성과가 대단하다. 강원도 <정선총쇄록>은 한 세기 전의 행로를 따라 아리랑길의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 경상도 <함안총쇄록>은 향내 세력 연구는 물론 지방관 업무와 작성 문서를 검토한 연구가 나왔다. 초대 여수군수로서 기록한 <여수총쇄록>은 오늘날 지역문화의 설계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도총쇄록>은 호적이나 전답 등 섬 생활뿐 아니라 배를 타고 한강과 강화를 거쳐 서해로 내려오는 노정이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번역본이 나온 <익산총쇄록>은 1900년대 초의 모습을 전해주는 1차 사료가 된다. 지금은 경기도로 편입된 <평택총쇄록>은 행정의 근대 전환을 보여주는 사료가 된다. △지방관으로 성실했던 오횡묵 오횡묵이 지방관으로서 성실했던 모습은 총쇄록에서 거듭 나온다. 강원감사는 포상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고, 경상감사는 향내 안정의 공을 들어 함안군수 연임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수와 지도군 등 신설한 군의 첫 군수 선정은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정선 자인 함안의 백성들은 스스로 만인산(萬人傘)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총쇄록에는 수많은 시가 수록되었다. 오횡묵은 시 짓기를 즐겼다. 그는 중인들의 한시 모임인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에 출입했다. 인왕산 아래 정자에 위항시인들이 모였고, 백운동에 집이 있는 그는 시사의 중심이었다. 친구 시인들은 임지로 찾아와 서울 소식을 전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총쇄록 기록에 그는 언제든 당당했다. 오횡묵의 배경은 국왕 고종과 민비였다. 무과 급제 후 궁궐 수문장을 지낸 그는 1884년 7월에 왕명을 직접 받고 공상소(工桑所)를 설치해서 감동(監董)이 되었다. 공상소는 궁궐에 필요한 각종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던 기관으로 경무대 즉 현 청와대에서 창의문 일대까지 넓은 면적을 보유했다. 고종과 민비가 휴식을 위해 왕림할 때마다 감동 오횡묵이 직접 모셨다. 그러니 지존과 이런 인연으로 인해 여느 관리와는 격이 달랐다. 더구나 지방관 재임 중에도 공상소 임무를 계속 관계하였다. 재임 중 상경할 때도 공상소를 찾아온 민비를 만나고 있었다. 그런 위상을 가진 그는 임지의 향리나 백성에게 당당했고, 감사나 전운사에게도 과하게 저자세일 필요가 없었다. △사천 민란의 조사관 임무 오횡묵은 1893년 2월부터 1894년 9월까지 고성부사로 재임했다. 당시 향촌 실정에 정통했던 그는 면리 행정의 단속과 조세 수취상 폐단의 금지, 정부 시책의 전달 등 지방관 업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1894년 초 경상도 남부도 사정은 전라도와 다름없이 심각하였다. 정월에는 사천 난민이 읍내 민가 10여 채를 불사르고 향리를 징치하는 등 소란이 일어났다. 오횡묵은 조사관으로 파견되어 이를 수습하였다. 4월에는 김해 백성 수천 명이 봉기하여 부사를 쫓아내고 향리에게 분풀이를 해서 창원부사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기록 갑오년 동학 관련 기사는 4월 7일자부터 나온다. 감영이 경계하는 공문을 전재하였다. 11일에는 전라 감영의 토벌군이 비류를 잡아들이면 도망 무리가 경상도에 올 거라는 말이 있었다. 27일자에는 전라도 여러 지역 봉기 상황과 황토현전투의 결과를 실은 경상 병영의 정보를 기록했다. 삼도 수군을 지휘하는 통영에서도 연이어 고부 염탐기와 홍계훈의 경군 패배 소식, 전라 감영의 상황을 알리는 정보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동학농민군의 영남 출몰을 우려하는 경상감영이 여러 조처가 시급해 보인다. 그 핵심 내용은 오가작통의 강화책이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사료 가치는 여러 전문을 실은 기록성에 있다. 서울 정부 소식, 경상감영 및 병영과 통영의 조치, 그리고 전라감영에서 보내온 공문이 상세하다. 청일 군대의 도성 안과 밖 대치, 일본군의 궁궐 침입와 청일전쟁의 개전도 순서대로 나오고, 교정청의 개혁방안이나 갑오개혁의 내용도 그대로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의 가치 전라도의 폐정개혁 주장은 경상도 남부에 영향을 미쳐왔다. “동학 소동이 한번 나오자 민란이 이어서 일어나니” “온 도내를 둘러봐도 한 구석도 평안하고 깨끗한 지역이 없었다.”고 하였다. 고성도 다름없었다. 농민들이 “폐단을 개혁해서 백성을 편케 한다는 명분으로 깃발을 세우고” 북삼면 배둔리에 집결하였다. 부사 오횡묵은 이들을 피하지 않고 만나서 설득하며 28개조 개선책을 마련하였다. 누적된 폐단이 집단행동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동학도가 찾아왔다. 하동 사는 최학봉인데 6월 그믐부터 남원 전봉준 접소의 통문을 가지고 각 군현을 살피고 있다고 하였다. 남원 접소가 믿기지 않지만 전라도 상황을 이용해서 경상도 군현에서 활동하는 동학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임 고성부사가 임명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와중인 9월에 임지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며 기록한 내용은 생생하다. 일본군의 병참부 전신소 설치와 대규모 군대가 북상하는 실상이 나온다. 그와 함께 경상도 남단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동학도들이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실상을 전하고 있다. 갑오년 9월은 전국이 동학농민군 세상이었다는 증언이었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이헌영(李永)의 <금번집략(錦藩集略)> <금번집략(錦藩集略)>은 1894년 동학농민군 봉기 당시 충청도 관찰사 이헌영이 작성한 것으로 '일록(日錄)'∙'별계(別啓)'∙'별보(別報)'∙'별감(別甘)'∙'시구(詩句)'의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헌영(李永 : 1837~1907)은 1870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수찬이 되면서부터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개항 이후 그는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가서 세관 관계 기관들을 시찰하였고 이후 통리기무아문의 통상사당상이 되었다. 1883년에는 부산항감리를, 1886년에는 참의내무부사이자 일본주차대신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1890년 이후에는 이조참판∙협판교섭통상사무∙성균관대사성∙공조참판∙병조참판∙경상도관찰사∙한성부좌윤∙형조참판∙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4월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1895년부터 1904년 사이 궁내부특진관∙내부대신∙평안남도 관찰사∙중추원1등의관∙의정부참정∙장례원경∙시종원경∙경상북도 관찰사∙경효전제조 등을 고위관료를 하였다. <금번집략> 중 '일록(日錄)'∙'별계(別啓)'∙'별감(別甘)'은 청일전쟁 초기 충청도 지역의 전투상황과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에 대한 정부와 지방관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이중 '일록(日錄)'은 1894년 4월 25일 이헌영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신임 감사 박제순(朴齊純)으로 교체되는 8월 29일까지 쓴 일기 기록이다.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아산 주둔 청국군의 동향과 인접한 여러 읍에서 허다한 접대비용 지출 등을 수록하였다. 6월의 기록은 청국 병사의 접대와 청국군 동향, 직산과 성환 전투에서 패한 청국군이 연기 지역으로 떠나는 상황을 적고 있다. 7월과 8월은 이인역을 시작으로 서천∙청양∙한산∙연기∙공주 지역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동향과 이에 대한 지역의 대응책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지역 농민군의 제2차 봉기와 관군∙유회군∙일본군의 진압에 대해서는 홍주 영장 홍건(洪健)의 <홍양기사(洪陽紀事)>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별계(別啓)'는 같은 해 6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의 기록으로 청국군∙일본군∙동학농민군의 상황이 섞여 있다.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내포 일대로 흩어진 청국 병사들이 들어와 마을을 약탈하고 놀란 주민들이 흩어지는 등 막심한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서산∙해미∙홍주∙덕산∙예산 등지의 약탈이 가장 심하였다고 한다. 본진이 있던 아산에서 청국군이 물러나고 일본군이 백석포를 거쳐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일본군은 객사와 산비탈 등에 주둔하는 한편 민가와 관청 건물에 들어가 남아있는 전곡과 집기 등을 빼앗고 사직단과 관청의 장부를 불태워지는 현감의 상황 보고를 수록하고 있다. 이후 매일 1,000~1,200명의 일본 병사들이 충주를 지나갔고 그들의 요구대로 수천 명의 인부를 마련해주었다 한다. 또한 임천과 공주∙청양∙보은∙서천∙한산∙연산 등지의 동학농민군 활동과 관련한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총칼을 들고 말을 탄 ‘동학배’가 작청에 난입하여 협박하고 수백의 무리를 이루어 금전과 재물을 약탈하거나 수성군의 무기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산에 도착한 무리 57명은 전라도 부안의 동학인으로 재물과 무기∙마필 등을 빼앗는 등 폐단이 컸다고 한다. '별감(別甘)'은 이헌영이 충청도 각 지역 지방관리와 유회소(儒會所), 민보군 개인 등에 보낸 전령과 효유문을 모은 것이다. 이인민회소(利仁民會所)에 보낸 전령에서는 경솔하게 무리를 모으면 나라는 더욱 위험하게 되므로 본업에 물러가 종사하고 조정과 방백의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공주∙홍산∙은진의 유회소 및 진천 민회소, 부여 유생 천기일(千基一), 영동 집강 손인택(孫仁澤) 등에게도 유사한 전령을 내렸다. 반면 관내에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시행을 지시하였다. 내용은 각각 해당 동내에서 위력이 있고 근실한 사람을 골라 동수(洞首)로 정하고, 사람마다 이름을 적어서 오가작통하여 1통마다 통수(統首)를 두고, 주민을 조사하고 타일러서 밤낮으로 살피고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상한 자는 적발하고 단속을 배가하여 방법을 마련하고 따로 법률을 만들어 실효를 거둘 것을 주문하였다. 이헌영은 평양으로 퇴각 시 천안에 맡겨둔 직예제독 예지차오(葉志超)의 군자금도 보관 후 돌려주게 했는데, 원래의 수량과 일일이 대조하여 살피고 착실하게 맡아두었다가 나중에 찾아갈 때를 기다리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공주∙전의∙목천∙온양의 지방관에게는 청국군 군수물자 운반을 위한 우마를 각각 나누어 정하도록 지시하면서 명령을 어길 시에는 군율로 처리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연기∙청주∙청안∙음성∙충주 등 각 지역에는 읍의 경계에서 기다리고 각별히 호행토록 하였다. 직산현감에게는 성환 전투에서 전사한 청국군과 일본군 모두를 예장(禮葬)하라고 당부하면서 각기 무덤 옆에 단을 설치하고 표를 세워 살필 수 있는 근거로 삼고 그 전말을 자세히 보고토록 지시했다. <금번집략>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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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3 15:11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의 즐거움

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학 캠퍼스로 출근하는 것은 교수 생활을 해 온 나의 고유한 즐거움이다. 아침 등굣길, 젊은 학생들 사이로 배낭을 메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띄면, ‘정년을 앞둔 교수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업 준비를 하시려고 일찍 출근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저절로 흐뭇해진다. 그런데 며칠 후 교내 행사에 참여하니 학생 대표석에 (교수라고 착각했던)그 분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후 사석에서 그 분에게 만학의 이유를 물으니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주기 위해 대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 입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공부가 재밌고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과 교수들이 수업시간, 시험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어린 학생들에게 모범이 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표를 위해 공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은퇴 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또 다른 모델이 필자 주변에 있다. 연구소에서 평생 연구직으로 종사하며 나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분이 은퇴즈음, 평소 소망이었던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원문소설을 읽고 소화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60대에 영문학과에 편입하여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대학 생활 동안 젊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졸업 후 대학원까지 진학하였다.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직접 아일랜드에 가보고, 소설의 배경이었던 더블린을 방문하여 작가의 하숙집, 애용하던 카페, 서점에 가서 작가와 시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느끼는 경험을 통해 생애 최고의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재취업, 고령자 창업, 재교육 등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퇴직자 스스로 은퇴 이후를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기대수명은 점점 증가하는 반면, 퇴직연령은 평균 50세 머물러있어 은퇴 후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에 치여 못했던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사회변화를 고려하면 (지역)대학이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은퇴 후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구체화시키고 지원하는 역할을 지역 교육기관(대학)이 수행해 나가야한다. 우선은, 본인이 꿈꾸고 진짜로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려는 도전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공부를 시작해 보려는 도전과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미 젊은 학생들이 있는 밝고 활기찬 캠퍼스에 발을 디뎌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고 본보기가 되고 있는 분들처럼 본인의 목표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늦은 나이에 공부하려는 분들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역대학, 고등교육기관, 지자체 등에서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평생교육 체계 내에서 조금 더 나아가 마이크로디그리(Micro Degree) 형태의 성인학습자 교육을 통한 소단위 이수 등 수요자의 요구에 맞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퇴직자들의 전문적인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 지역주민들에게 환원하고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서로가 함께 공부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필자도 젊지 않은 나이에 변화를 위해 용기를 내고 실천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 인생 절반 이상을 살아온 시점에서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를 한 번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떠밀려 주변의 잣대와 의무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을 마무리하고 진짜 하고 싶었던 나만의 공부를 찾아서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생이 주는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꿈을 찾아 캠퍼스를 누비는 만학도를 만나면 가장 따뜻하고 반가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싶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13 15:10

지금이라도 내진설계 기준 강화해야 한다

지진이 발생한다는 전제하에서 모든 건축물에 대해 엄격한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고베 대지진의 사례에서 보듯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대적으로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더욱 안전하다는 전북조차 이젠 결코 예외지역이 아님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결론은 내진설계를 강화해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이미 지어진 기존 건물에 대한 보강공사는 쉽지 않겠지만 이와 별도로 신축에 대해서는 안전한 기준을 철저하게 적용토록 해야만 한다. 지난 12일 부안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더 이상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게 확실해졌다. 부안 바로 위쪽에 있는 군산의 경우 어청도 해역에서 지진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 다른 지역보다 더 민감한 곳이다. 그런데 군산시의 공공시설물에 대한 내진보강 성능평가 및 보강공사 추진 현황을 보면 건축물과 도로시설물(교량‧터널) 등 총 306곳 중 내진성능 확보가 이뤄진 곳은 43곳으로 전체의 14%에 불과하다. 사실상 대부분이 내진보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진설계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내진보강 사업이 사실상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는 1988년 ‘건축법’으로 처음 도입된 이후 그 대상을 소규모 건축물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했으며 2008년에는 ‘지진재해대책법’ 재정으로 기존 시설의 내진보강 의무화를 시행했다.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대중이용시설이기에 내진보강이 필수적이나 막대한 재원조달의 한계로 인해 더디게 진행중이다. 민간 건축물의 내진 보강 사업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번에 부안에서 발생한 지진은 전북으로 국한할때 역대 최대 규모다. 1978년 이후 전북에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건 처음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지진 발생과 관련 인명 피해는 없었다. 피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건 운이 좋았을 뿐 이제 강진이 언제든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규모 4.0 안팎의 중형급 지진뿐 아니라 6.0 이상의 대형 지진이 언제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만큼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 조사를 철저히 하고 건물의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전북의 경우 지난해 6월 기준 건축물 내진율은 13.6%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서 위험성을 줄여나가야만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4.06.13 14:55

도-지역 국회의원 간담회, 실질적 소통·협력을

전북특별자치도가 12일 서울에서 전북지역 국회의원, 그리고 전북에 연고를 둔 국회의원들과 잇따라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제22대 국회 개원에 맞춰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역구 의원과 지역 연고 의원들에게 국가예산, 지역 현안사업, 지역발전 관련 법안 등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지역발전을 위해 지자체와 정치권의 긴밀한 소통·협력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국가예산 확보와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해마다 정기적으로 지역구 의원과 지역 연고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정책간담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해 왔다. 전북뿐 아니라 전국 대다수의 지자체가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과 수시로 간담회를 갖고 지역발전 협력체계 구축에 나선다. 하지만 지자체-국회의원 간담회는 형식적 행사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이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간담회에 불참하는 국회의원도 생긴다. 지자체와 지역구 국회의원 간담회는 주로 지자체의 일방적인 협조 요청으로 채워진다.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에서 장황하게 준비한 도정 현안 자료를 일일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이후 참석한 의원들이 돌아가며 한두 마디씩 의견을 내놓으면 예정된 시간이 다 채워진다. 12일 행사에서는 이 같은 간담회 운영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았다. 지역 현안에 대한 심도있는 토의 중심으로 간담회를 진행하자는 것이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지자체가 원팀으로 뭉쳐 전북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서로 시간을 쪼개 어렵게 마련한 정책간담회가 단체사진으로 만족하는 형식적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지만 진정한 쌍방향 소통이 되도록 신경써야 한다. 자체 건의·요청사항에만 관심을 두고, 의원들의 지적과 제안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대응으로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의원들의 지역발전 제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사안별로 긴밀하게 소통·협력해야 한다. 또 선거과정에서 의원들이 내놓은 지역발전 공약 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세부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소통·협력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4.06.13 14:02

군산시 ‘우리동네 홍반장’, 전북특별자치도 우수사례 선정

군산시 복지시책인 ‘우리동네 홍반장’이 최근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복지 사각지대 제로를 위한 실천 다짐 대회’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이날 행사는 ‘복지 사각지대 제로, 우리의 힘으로!’를 주제로 열렸으며, 실천 다짐 세리머니와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복지역량를 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는 복지정책과 이정래 계장이 직접 시군 우수사례로 선정된 '우리 동네 홍반장'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찾아가는 생활 돌봄 복지서비스의 하나인 '우리 동네 홍반장'은 각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등 마을의 손재주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복지서비스다. 특히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인적 안전망을 활용해 이웃 간의 상호 돌봄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며, 지난해 5월 나운2동 · 나운3동에서 시범 시행된 후 올해 전체 읍면동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홀몸 노인 등 210세대에게 형광등 교체, 출입문 현관문 건전지 교체, 1대1 매칭 돌봄 등 일상 속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등 눈에 띌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참석자들은 ‘우리 동네 홍반장’ 사례를 공유하며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복지서비스 필요성에 깊은 공감과 관심을 표출했다. 이석기 군산시 복지정책과장은 “우리동네 홍반장사업이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인정받은 만큼 앞으로 지역 취약계층의 복지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가속화 할 것”이라며 “향후 홍반장이 복지 문제 해결사로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군산
  • 이환규
  • 2024.06.13 12:41

'호남의병 최초 순국' 일광 정시해 의사, 118주기 추모제

“임금이 치욕을 당했으니 신하된 자 죽어 마땅하리니, 이내 몸은 어찌 해야 하느뇨? 목 놓아 소리치고 통곡하나니, 이 어찌 미치광이라 하지 않으랴?”(主辱臣當死 從何輸此身 放歌歌又哭 疑是一狂人) 지난 11일 사단법인 일광정시해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인석) 주관으로 일광기념관(고창읍 소재)에서 호남의병 최초로 순국한 일광 정시해 의사의 제118주년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노사 기정진·송사 기우만 선생의 고산서원(장성) 공연웅 도유사, 한국유일의 창의서원이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성서원(정읍) 임장옥 원장, 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정읍) 유성엽 회장, 익산의병기념사업회 이용희 회장, 옥천문화연구원(순창) 설정환 소장, 고려인문화관(광주) 김병학 관장,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홍준수 전북본부장 등 호남지역의 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또한 고창지역에서도 고창향교 신영남 전교, 무장향교 김형석 전교, 흥덕향교 기호직 전교 등 3향교 유림과 고창진주정씨종친회 정기표 회장단, 고창로타리클럽 김학배 회장단, 고창전몰군경유족회 이만동 회장, 영광군수후보 정원식 항일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 흥동장학계 고훈 임원단, 한국불교미륵종 김태근 종정, 고창농협 유덕근 조합장 등이 참석해 헌화했다. 추모제는 이만세 이스피치방송아카데미원장의 사회로, 유기상 박사(민선7기 고창군수)의 일광 자호기 소개를 담은 추모사로 시작됐다. 일광정시해 의사 기념사업회 김인석 회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호남의 여러 기관단체에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호남의 의병정신을 선양하고 공동추모사업의 공감대 형성을 다짐했다. 일광 정시해(鄭時海) 의사는 양친 상에 6년을 시묘한 효자 선비로 스승인 면암 최익현 의병진의 소모장을 맡아 의병을 모으고, 중군장을 맡아 일본군과 싸우던 중 1906년 6월 11일 순창전투에서 33세에 순국했다. 이에 유림들은 순국 6년 후인 1912년에 추모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에 병탄 된 식민지에서 순국의병장 추모사업을 한다는 것은 투옥을 각오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연명으로 통문(通文)을 낸 귀중한 사료가 5년 전에 발굴 되었다. 해방 이후 ‘충효양전(忠孝兩全)의 사표로 규정하고 무장성과 고향 삼태마을에 충효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왔다. 한편 1994년 설립된 일광기념관(관장 정만기)은 항일투쟁역사를 배우는‘일광아카데미’, 국외 항일독립현장을 찾는 ‘일광답사단’, 부모 고향의 역사를 체험하는 ‘고창어울마당’, 지역의 학생들이 배우는 ‘항일역사교실’, 지역을 두발로 직접 걷는 ‘쉬엄쉬엄걷기’, 국내 역사여행 ‘길동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의 우리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 사람들
  • 김성규
  • 2024.06.13 12:40

장수군, 내년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 모집

장수군이 유능한 청년 농업인력 발굴을 위해 ‘2025년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을 오는 28일까지 모집한다고 밝혔다.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은 농업경영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병역의무 대신 본인 영농기반에서 영농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농촌인력난을 해소하고 농업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제도다. 신청 자격은 후계농업경영인 또는 2025년 후계농업경영인 신청을 희망하는 자로 병역판정검사를 받았거나 금년도 병역판정검사 대상자 중 산업기능요원 편입을 희망하는 자이다. 전문대‧대학 등 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경우나 휴학 중인 자는 신청이 불가하나 산업기능요원 편입 희망 연도에 졸업하는 자, 영농사업장에서 통학·통근하는 자 또는 방송 통신에 의한 수업을 수강하는 자는 신청 가능하다. 의무 복무기간은 편입된 날부터 현역 입영대상자의 경우 34개월,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 보충역의 경우 23개월 동안 영농활동을 하게 된다. 신청을 희망하는 자는 군 홈페이지 또는 농업기술센터 농업인육성팀(063 350 2844)으로 문의하면 된다. 이수란 농촌지원과장은 “유능한 인력 유입을 유도해 농업·농촌 인력난 해소와 장수군 미래 농업을 이끌 전문 농업인으로 성장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며 “청년 농업인들의 많은 관심과 신청을 바란다”고 말했다.

  • 장수
  • 이재진
  • 2024.06.13 11:14

매일유업 상하공장, 주민과 함께 운곡람사르습지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

매일유업(주) 상하공장은 지난 12일 고창군생태관광주민 사회적협동조합 등과 함께 운곡람사르습지 생태연못 일원에서 논둑복원지 보수 활동을 추진했다. 이날 논둑복원지 보수 활동은 운곡람사르습지 내 논둑복원지 총 75m 구간에 걸쳐 유지 보수를 진행했다. 운곡람사르습지는 폐농경지가 된 후 30여 년 동안 사람들이 발길이 끊기자, 자연스럽게 생태 회복 과정을 거치며 원시습지로 복원된 곳으로 운곡람사르습지 주변 마을(용계, 독곡, 부귀·안동, 매산, 송암, 호암) 주민들이 이곳의 보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2016년 논둑복원을 시작한 후 논둑복원지의 유출수가 감소하고 수서곤충, 수서생물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반딧불이, 다슬기 등의 생물 개체수가 증가하였으며 현재 탐방객들에게 습지보전 인식증진을 위한 생태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상하공장 김동현 팀장은 “생태적 가치와 중요성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운곡람사르습지 논둑복원 보수 활동을 주민들과 함께하여 생물다양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어서 보람됐다”며 “앞으로도 유네스코 고창생물권보전지역 생물다양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고창군생태관광주민 사회적협동조합 김대원 이사장은 “운곡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왔던 논둑복원 사업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이달 중순께 반딧불이 탐사 프로그램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천혜의 자연 경관과 자연 생물의 소중함을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 고창
  • 김성규
  • 2024.06.13 11:13

[전북 연고 국회의원-전북자치도 간담회] “전북을 내 지역구처럼 챙기겠다”

전북이 고향이거나 연고를 가진 22대 국회의원들이 전북을 자신의 지역구처럼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12일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첫 상견례 차원에서 가진 연고 의원과 전북자치도 간담회는 전북발전을 위한 핵심법안과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전북이 연고 의원에게 거는 기대는 지난 21대 때보다 더 커졌다. 22대 국회 연고 의원들이 4~5선 중진과 인지도 높은 초·재선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국회부의장인 이학영 의원(4선·순창)을 비롯해 안규백(5선·고창), 정성호(5선·익산), 조배숙(5선·익산), 진선미(4선·순창), 유동수(3선·부안), 소병훈 의원(3선·군산) 등 중진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또 김남희(고창), 안태준(고창), 오세희(부안), 이기헌∙이용우(완주), 이정헌(전주), 임오경(정읍), 위성락(익산), 정을호(고창), 한준호(전주), 황정아(군산), 강경숙(남원), 김재원 의원(익산·완주)등 존재감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초·재선 의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간담회는 20명 이상의 연고 의원이 참석한 만큼 의원이 발언하기보단 도와의 소통창구를 여는 데 더 의의를 뒀다. 도가 지원을 요청한 현안은 전북 5대 법안과 5대 현안으로 구분돼 보고됐다. 5대 법안은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국립의학전문대학원법(공공의대법) △전주가정법원 설치법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북특별법 개정 등이다. 5대 사업으로는 △바이오 특화단지 구축 △전북교통망 국가계획 반영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2차 공공기관 이전 △특별자치도 제5차 국토종합수정계획 등이었다. 아울러 도는 연고 의원들에게 내년도 국가예산 확보 대응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국회의원 수가 10명밖에 안돼 전체 국회 상임위를 커버할 수 없는 전북의원들의 공백을 보완해 주기로 했다.

  • 국회·정당
  • 김윤정
  • 2024.06.12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