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숨겨온 기록, 세계의 기억이 되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지 1년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사업(Memory of the World: MOD)은 1992년 세계의 중요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중요 자산이라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시작되었다. 전쟁이나 사회적 변동 등으로 소멸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인류 기록유산의 항구적인 보존과 함께 세계 각국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함이 그 목적이다. 2023년 현재 세계기록유산 등재 건수는 총 494건이며 이 가운데 한국의 등재 건수는 18건으로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이 등재된 국가가 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기준은 세계사적 중요성을 담고 있는 당시의 기록이어야 한다. 단순히 오래된 기록이라고 등재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발전이나 인간과 공동체의 전환을 견인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나 문화·예술을 보여주는 기록이어야 한다. 아울러 유네스코 헌장에 위배되는 기록이나 정치지도자와 정당의 기록이나 국가의 헌법 등은 등재 대상이 아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기록은 중국의 갑골문, 아이작 뉴턴의 과학 및 수학 기록물, 슈베트트 컬렉션, 쉐익스피어 문서들, 체게바라 기록물, 난징학살 기록물 등이 있다.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은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고려대장경판과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 등이며 2023년 5월에 4.19혁명 기록물과 함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등재되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총 185건 1만 3000여 쪽에 이른다. 그러나 이를 생산자별로 구분하면 당시 농민군 기록은 30건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정부 기록(122건)과 진압군 기록(16건)이다. 그 외 지방 유생들의 견문록들(17건)이 있다. 농민군 기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30건 가운데 임명장류가 18건이며 사발통문과 포고문 등이 4건, 편지글 2건, 각 군현이나 마을 단위의 동학 인명록 3건, 기타 3건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가운데 농민군의 기록이 희소한 이유는 1894년 이후 이 사건 자체가 조선왕조에 대한 반란으로 규정되었고 농민군 참여자는 역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이후 참여자들은 피신과 도피의 과정을 겪었고 설령 고향으로 돌아갔더라도 가족을 데리고 피신해야 했다. 심지어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살았던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라는 사실을 후손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을 보관하는 것은 큰 화를 불러올 것이기에 모두 불태워 없앨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동학농민 기록물은 지난 100년 이상 방안의 천장이나 책의 표지 속에 숨겨 두었던 기록물들이다. 그나마 30여 건 남아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존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대부분 한문 기록이지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지난 10여 년에 걸쳐 한글 번역을 완료하였다. 지금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홈페이지 ‘사료아카이브’에서 원문 이미지와 탈초본, 번역본을 동시 열람이 가능하다. 지난 100여 년을 꽁꽁 숨겨왔던 반란과 반역의 기록이 세계의 기억으로 거듭난 일은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복권이다. 아울러, 비록 일시적인 후퇴와 반동의 시기는 있을지라도 역사는 자유와 공정과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