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동학 126년, 평화그림책으로 꽃 피우다
호남에 깃들어 사유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건 하나가 동학이다. 동학은 그 뒤 다음과 같은 어휘가 따라붙는다. 혁명이거나, 전쟁. 우리가 동학에 부여하는 의미는 대개 동학농민혁명 혹은 동학농민전쟁이다. 둘 모두 이 땅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어간 참혹함을 담고 있다. 전쟁에 처참히 지고 말았고, 혁명은 흔적도 없이 부수어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색하지만, 전국의 청소년들이 모여, 그 동학의 처참함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소박한 캠프를 열었다. 지난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책마을해리에서 <2019 청소년 동학캠프>가 열렸다. 벌써 6년째, 횟수로는 일곱 번째다. 이번 캠프는 이 땅에 가장 낮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밥 한 끼 나누자며 일으킨 동학을 바탕에 두고, 전국 청소년 서른 명 남짓과 함께했다. 그동안 열린 캠프가 참가 청소년들이 기자가 되어, 모두 <동학청소년신문>을 결과물로 만들어 냈다면, 올해는 결이 좀 다르다. 그림책이다. 전라북도의 동학공간을 126년 전으로 돌아가 살피며 당시 사람들의 사유를 잠깐 들여다본 청소년들이 그 과정을 평화에 실어 중계해 주었다. 그림책은 9월말 출판기념회를 통해 세상과 만날 예정이다. △청소년동학신문에서 동학평화그림책까지, 6년의 여정
청소년동학캠프가 열리는 책마을해리는 세대를 물문하고 누구나 찾아, 읽고, 하고, 쓰고, 펴내는 책 만드는 인문테마공간이다. 어린이시인학교와 청소년만화학교, 그림책학교, 서평학교, 생태학교 등 경험을 통해 책 짓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시작한 청소년 동학캠프는 전라북도 곳곳에 흩여져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이다. 동학농민군 대장을 선발하고, 무장기포지와 무장읍성, 선운사 마애불 등 고창동학 유적지를 탐사한다. 숙영지 만들기와 동학군 후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모든 과정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기록해 청소년동학신문을 발간해 왔다. 2019청소년동학캠프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준비했다. 준비팀은 제주43과 광주518, 일본군위안부, 625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등 아픈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그림책들을 접하면서 그 평화와 평등 이야기의 첫 시작인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그림책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그 아쉬움이 발단이 되었다. 이번 청소년동학캠프에서는 청소년들 시선으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고, 고민하고, 그 바탕이 되었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사흘, 동학이야기는 어떻게 그림책이 되어가는가
청소년동학캠프는 참가자들이 평화그림책 작가가 되어 다양한 주제의 평화그림책들을 탐구하고, 전북지역 동학유적을 답사해 각자각자가 해석한 평화스토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했다. 첫날은, 집결을 마친 청소년동학농민군들과 평화그림책 함께 읽고, 당시 농민들은 왜 동학농민혁명을 시작했는지 배경을 이야기했다. 이후 손화중과 김개남, 전봉준의 이름을 딴 접을 만들어 농민군대장을 뽑고, 우리에게 평화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 나눴다. 이야기 나눈 것을 바탕으로 가사를 새로 지어, 노래에 붙여 불러보기도 했다.
오후에는 진짜 저녁밥이 주먹밥이냐는 수많은 물음들을 뒤로하고 운동장에 모여 숙영지와 주먹밥 만들기를 진행했다. 비록 숙영지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의 생활을 엿보며, 내 마음 속의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소년 동학캠프 둘째 날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따라 탐사를 떠났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인 무장기포지와 동학농민혁명홍보관 무장읍성, 고창읍성, 전봉준 장군 생가, 도솔암 마애불 등을 돌아보았다. 특히 고창읍성에서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진윤식 이사장의 특강이 이루어졌다. 오후에는 동학농민혁명과 평화, 인간과 삶의 의미를 바탕으로 한 평화그림책 스토리 만들기를 진행했다.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야기부터,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바라본 평화그림책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윽고 밤, 거센 비를 무릅쓰고 참가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축가 곽재환 선생과 만났다. 곽재환 선생은 삶이 깃드는 건축가로 이름나 있다. 그는 평화의 바탕에는 자유와 평등, 우애가 깃들어야 한다, 누구나 무엇을 뜰 때 손바닥을 모아 만드는 손 집에, 욕심 대신 사랑과 화해, 평화를 담자는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전해주었다.
셋째 날은 이육남 그림책작가와 지난 밤 만든 평화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림책 지면을 구성했다. 한 지면에 글과 이미지가 어떻게 놓일지,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누가 그릴 것인지를 함께 생각하고 각자의 역할 나누어 그림책 만들기를 진행했다. 모두 펼침 한바닥씩 그림을 그렸다. 글을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캠프의 마지막 일정은, 가을에 태어난 그림책의 멋진 작가, 저마다 작가를 소개하는 작가소개글 쓰기였다. 작가 소개 글을 마지막으로 사흘동안 아쉬운 일정을 마무리했다. △역사의 현장 지금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가 바로 역사라는 깨달음
2017년부터 청소년동학캠프에 빠짐없이 참여한 광주 배자초 6학년 윤채율 학생은 미국에서 태어나 우리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매년 여름 참여하는 동학캠프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어서 참 좋다. 작년까지는 신문으로 나와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책이 나온다고 하니 더 정성을 기울인 것 같다. 책이 나오면 한번 더 고창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또 우리 역사에 대한 감성을 키우는 동학캠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문제 삼아 억지를 부리며 수출규제를 하고 그 일로 우리 국민이 일본 물건 안사고 일본 여행 안다니는 운동을 펴고 있잖아요. 이런 때에 동학캠프를 통해 일본과 우리가 오래전부터 맺은 불행한 관계를 이야기 나누니 더 의미가 컸어요. 해리중학교 이다경(2학년) 친구의 이야기다, 동학캠프는 역사를 돌아보는 캠프에서 나아가 내가 어떤 역사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감각을 길러준다.
시절도 광복으로 치닫는 8월이다. 일본과 물밑 경제전쟁의 복판에서 맞는 광복은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동학농민들은 우금치 패전 뒤, 일본군 기관총에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추풍낙엽으로 산화했다. 이번 동학캠프는 전북지역에서 10여명, 서울, 광주, 남양주, 인천, 하동 등 전국 각지에서 참여했다. /이영남 버들눈도서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