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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신협, '2018 신협 협동경제 멘토링 프로그램' 발대

파티마신협(이사장 유병환)은 지난달 30일 중산지역아동센터에서 경제교육 및 관계 형성은 물론 아이들에게 건강한 협동심과 문화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2018년도 신협 협동경제 멘토링 프로그램’업무협약식과 발대식을 진행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날 발대식에서는 파티마신협 직원들이 장학금을 모아 센터의 학생에게 전달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였다. 중산지역아동센터와 멘토링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2년째 하고 있는 파티마신협은 앞으로 ‘관계형성 및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신협에서 준비한 눈높이 경제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경제관념, 소비습관 등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또한 여름방학 물놀이 체험, 협동운동회, 전통시장 장보기 및 요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파티마신협의 양춘제 상임이사는 “아이들이 올바른 경제관념과 더불어 사는 협동의 소중함을 배우고,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파티마신협은 앞으로도 다음세대 주인인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협 협동경제 멘토링’은 전국의 신협과 인근 지역아동센터의 결연을 통해 신협 임직원이 취약계층 아동들의 멘토가 되어 아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 사람들
  • 강현규
  • 2018.05.31 19:23

선고유예판결 받은 보육교사의 자격 취소 여부

문: 보육교사로 일하던 甲은 2015년 4월 어린이집 원생의 발바닥을 파리채로 때려 학대행위를 한 혐의로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됐습니다. 甲은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벌금 50만원의 선고유예판결을 받았습니다. 지자체인 A시는 甲이 약식기소된 뒤 법원에서 동일한 내용의 약식명령을 받아 자격취소사유에 해당한다며 甲의 보육교사자격을 취소했습니다. 이 경우 A시의 자격취소가 적법할까요. 답: 대법원은 2018년 4월 26일 선고 2016두64371 판결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 헌법의 대원칙이므로(헌법 제27조 제4항), 기소된 사실만으로 제재적 처분의 근거로 삼는 것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유죄의 확정판결도 없이 단순히 검사의 약식명령 청구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영유아보육법 제48조 제1항 제3호에서 정한 ‘아동복지법 제71조 제1항에 따른 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은 분명하고, 나아가 여기서 ‘처벌’은 과벌(科罰)에 해당하는 형의 선고가 있음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고 새길 수 있으므로, 선고유예의 확정판결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이러한 ‘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영유아보육법 제48조 제1항 제3호는 자격취소처분의 요건으로 아동학대행위를 저질러 아동복지법 제71조 제1항에 따른 ‘처벌’을 받은 경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육교사인 甲이 아동학대행위를 하여 검사가 약식명령청구를 하였고, A시는 약식명령청구를 아동복지법상 ‘처벌’로 보고 甲에 대해 보육교사자격취소를 하여 甲이 보육교사자격취소처분의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대법원은 ‘처벌’은 과벌(科罰)에 해당하는 형의 선고가 있어야 하므로 약식명령청구가 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해당 처분 이후 甲에 대한 선고유예 확정판결이 있었더라도 이 또한 ‘처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법무법인 최상 문의(063)904-3300

  • 오피니언
  • 기고
  • 2018.05.31 19:23

내 고향 진안 마이산 - 전종용

▲ 전종용나의 고향은 진안 마령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안군 마령면 원강정마을과 월운마을 사이에 있는 외딴 집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500m쯤 떨어진 월운마을에 놀러 가서 해가 질 때 돌아오곤 했다. 마을에서 놀 땐 어김없이 나무로 만든 칼을 들고 장군 흉내를 내면서 떼 지어 함미산성 성터에 올라 소리를 지르며 성터 주위를 한 바퀴 돌아왔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후백제 시대에 도적떼가 많아 함미성에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를 지어 놓고 지키던 곳이었다고 한다. 성안에 기왓장 파편이 많은 걸로 보아 확실하다. 지금은 마이산 등산길이 되어 함미성터 옆을 통과하고 있는데 이 등산길을 따라 가노라면 광대봉을 지나 마이산에 이르게 된다. 특히 11월 중순 무렵 이 길을 오르면 왼쪽 월운계곡에 붉게 물든 숲과 오른쪽 마령 들이 보이는 절벽 모습이 절경 중의 절경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 동안 가을 소풍은 항상 금당사와 마이산으로 갔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고적과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소풍을 가서도 마이산 탑들의 절경 그리고 역사 이야기에 빠져 가장 늦게 머물러서 붙여진 별명이 느림보 고적 박사였다. 진안에서 오랫동안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던 이규형 외숙으로부터 마이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산묘와 금당사 탑사 은수사를 거쳐 천왕문을 찾았던 추억이 남아 있다. 외숙께서는 내가 마이산에 대해서 물으면 이름의 유래와 탑의 전설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마이산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서다산이라고 했으며 조선 태종이 남행했을 때 모양이 말 귀와 같다고 하여 마이산이라 칭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또 마이산은 용출산, 용출봉이라고 불렀고 마령 사람들은 속금산이라고 했다. 외숙께서 전해주신 마이산 전설 이야기에 의하면 전에는 부부산신이었다고 한다. 삼천일을 수도한 뒤 마침내 승천할 날이 닥치자 남산신은 사람들이 승천 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여산신은 품 안에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보고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마침 새벽에 물 길러 나왔던 아낙네가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는 바람에 승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남산신은 여산신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고 발로 차 지금 애기봉이 아빠봉 곁에 있고 엄마봉은 죄스러워 다소곳이 외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진안 쪽에서 보면 숫마이봉 옆에 아기봉이 붙어 있고 암마이봉은 오른쪽으로 다소곳이 고개 숙인 모습이다. 마이산은 계절 따라 이름도 각각인데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한다. 외숙께서는 탑사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큰 탑은 예부터 있었으나 나머지는 탑사 주지였던 이갑용 처사가 쌓은 탑이라고 주장하지만 주탑인 천지탑과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 등 큰 탑은 예부터 있었고 한 줄로 쌓은 외줄탑 정도는 쌓았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마이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탑사 주변에 산비둘기들이 많이 날고 있다. 진안의 명산 마이산은 우리 진안 사람들의 품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 생각이 나면 마이산을 찾는다. 지금은 벚나무를 많이 심어 4월 하순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금당사, 담락당 시비를 지나 마이산과 신비한 돌탑을 찾으면 항상 마음이 포근하다. △전종용 씨는 진안 출생으로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했다. 지금은 한학에 심취하며 취미로 글을 쓰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5.31 19:23

촛불정신 되살려 바꿀 곳은 바꾸자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군산경제를 지탱해온 지엠 군산공장이 끝내 문을 닫으면서 그 뒷모습을 맥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전북도민들의 심정은 허탈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대기업의 공장 하나로 지역경제 전반이 휘청거리는 게 전북의 서글픈 현실이다. 오늘의 전북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숫자는 참으로 초라하다. 경제의 핵심 지표인 전북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최하위권이며, 전북에 본사를 둔 대기업과 상장기업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재정자립도 역시 꼴찌를 다툰다. 전북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타 시도로 떠나면서 인구수는 180만명선을 턱걸이 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역의 활력도 그만큼 떨어지는 상황이다. 전북이 낙후의 오명을 갖게 된 데는 무엇보다 산업화 과정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탓이 크다. 수도권과의 차별, 영남권과의 차별, 호남권에서마저 광주·전남과의 차별을 당했던 게 지난 역사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역의 차별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지역의 지도자와 지역민들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지역의 언론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어서는 미래의 비전도 없다. 급변하는 시대에 전북을 우뚝 세울 지혜와 도민들의 역량 결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북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도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방안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지역발전 획기적 전기 마련해야 전북이 안고 있는 취약점은 무엇보다 경제의 후진성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계기로 지역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역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간에 지역의 산업구조를 확 바꾸기는 어렵다. 일단 기존의 지역 연고사업인 섬유산업·식품산업·자동차산업의 고도화를 이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전북의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산업을 발굴해야 한다. 실제 전북은 농식품 분야에서 많은 강점을 갖고 있다. 농업진흥청과 관련 산하기관이 전북혁신도시에 입지하고 있다.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익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읍 방사선 육종연구센터와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도 조성됐다. 새만금의 풍부한 땅이 있어 스마트 팜 등 미래형 농업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도 갖췄다. 이런 강점을 기반으로 농생명가치 사슬을 완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전북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전주를 제3의 금융중심지로 육성시킨다고 지역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북혁신도시 일원에 금융중심지 지정 및 전북금융센터(JBFC) 건립, 연기금(대체투자), 농생명금융 및 전북 주력산업 연계 금융기관 유치, 금융전문인력 양성 및 금융 관련 연구 기능 집적화를 추진한다는 게 전북도의 계획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구체적 실현이다. 거창한 계획보다 당장 농협중앙회 하나만이라도 유치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전북은 또 타지역에 앞서는 많은 유무형의 문화자산들을 갖고 있다. 이런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세계소리축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남원 춘향제, 무주반딧불축제, 김제지평선축제 등이 전국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군산 근대역사지구는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빔밥·콩나물국밥·막걸리·가맥 등의 먹을거리도 자랑거리다. 이런 자산들을 더욱 발전시킬 경우 관광자원으로서는 물론,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본다. ■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비전, 자산이 있어도 실행이 따르지 않고 활용이 이루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침 어제부터 지방선거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지방선거는 단지 한 인물의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지방선거에서 지역의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올 지방선거에서 지방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국적인 대형 이슈에 묻히면서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부속물로 전락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지금의 낙후 전북이 증명한다. 유권자를 보지 않고 당만 바라보는 지역의 정치행태를 언제까지 그대로 둬야 할 것인가. 이런 행태를 끝내야 정치도, 지역도 발전할 수 있다. 바로 유권자의 책무다. 지역의 지도자로 누구를 뽑았느냐에 따라 지역의 성쇠가 갈렸다는 사실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지방자치가 강화되면 지역을 이끌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역할은 더 막중해질 것이다. 지연과 혈연, 정당의 색깔만으로 선택해서는 결코 좋은 지도자를 만날 수 없다. 능력과 자질, 정책으로 선택할 때만이 가능하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18.05.31 19:23

영웅이 된 부자

프랑스와 영국이 벌인 백년전쟁(1337년~1453년)은 자그마치 116년 동안 지속됐다. 휴전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이어진 이 지루한 전쟁은 초기, 영국군이 대세를 이어갔지만 프랑스군이 다시 승기를 잡아 뺏겼던 영토를 되찾기 시작해 1453년 마침내 보르도까지 되찾으면서 전쟁을 끝냈다. 전쟁의 폐해는 컸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영국군에게 함락됐던 도시들은 수많은 중세의 기사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정치적 보복과 식민 치하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 북부의 항만도시 칼레도 그 중의 하나다. 칼레는 1347년 영국군에게 함락됐다. 한때 에스파냐령에 놓이기도 했지만 프랑스가 다시 칼레를 되찾은 것이 1598년이니 어찌됐든 칼레는 251년이나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 식민지로 통치를 받아온 셈이다. 칼레의 영웅 이야기가 있다. 백년전쟁의 시기, 칼레를 점령한 영국군에게 저항했던 여섯 명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 항을 포위해 점령했지만 칼레 시민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들은 불로뉴 백작이 지은 성채를 사수하며 서로를 의지해 1년 가깝게 영국군에 저항했다. 양식이 바닥나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능하게 되고서야 칼레 시는 영국군에 항복했다.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을 받아들이면서도 무거운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칼레의 유지 여섯 명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에 누가 나설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유스타슈 생 피에르. 칼레의 가장 큰 부자였다. 그가 맨발에 동아줄을 걸고 나가겠다고 나서자 다른 유지들도 뒤를 이었는데 그 숫자가 여섯 명이나 되었다. 피에르는 가장 늦게 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피에르였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바뀔 것을 염려해 자신이 먼저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의 희생정신에 감격한 여섯 명 유지들은 동요하지 않고 교수대에 섰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에드워드 3세의 왕비가 간청한 덕분이었다. ‘갑질’의 상징이 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 줄줄이 조사 받고 있다. 한심한 광경이다. 영웅이 된 피에르와 여섯 명 부자 이야기가 더 새롭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5.31 19:23

[창간 68주년 특집 : 전문가에 전북 경제 길을 묻다] 군산 출신 이종훈 한성대 이사장 "수심 깊은 새만금 신항만 경쟁력 커…물류·생산 기능 조화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가동 중단에 이어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수 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협력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는 등 전북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대책은 무엇인지, 전북일보가 창간 68주년을 맞아 한성대 이종훈 이사장(81)을 모시고 이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이종훈 이사장은 군산 출신으로 중앙대 경제학과를 나와 도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앙대 총장과 덕성여대 이사장을 지냈다. -전국 2% 수준에 불과한 전북 경제가 오늘날 이처럼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일제 강점기에는 군산이 남북한을 합쳐 전국 7대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스팔트가 가장 먼저 도입된 곳이 군산과 전주였고, 일제 강점기에 전기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도 군산이었습니다. 일본인이 먹는 쌀의 43%를 우리나라에서 가져갔는데, 그 중심에 군산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시대가 아닌 공업시대가 되었습니다. 식량자급화가 이뤄지니, 농업은 중요성을 잃고 공업화가 중요하게 됐지요. 그런데 군사정권이 울산 등 경상도를 중심으로 공업화를 했고, 서해안 쪽은 개발이 늦어졌습니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1965년)에 비해 한중수교(1992년)가 크게 늦어진 것도 서해안시대가 늦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그렇다 치고요, 오늘날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등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군산 등 전북은 원래 공업지대가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 공업을 촉진하기 위해 몇 개 큰 기업을 이쪽에 배치했지만, 기반이 없이 이뤄지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원래 공업지대가 아닌데, 한 두 개 대기업을 배치한다고 해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고,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나 일본에 의존해서 공업화를 했는데, 이제는 중국도 많이 발전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의 모회사와 일본의 손자회사, 우리나라의 자회사가 경쟁하고 있는 패턴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대기업 보다는 자회사들이 더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의존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새만금을 개발했으니, 새만금을 활용해서 공업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옛 군산항은 수심이 얕아 제대로 기능을 못했으나, 새만금에는 국제항으로서 손색없는 신항만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내륙의 공업화 지대가 약하니 별로 역할을 못하지만, 새만금 신항만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새만금을 개발해야 합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생산시설은 그대로 남아있고 협력업체들도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앞으로 중요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데, 정부로서는 지역경제 차원이 아니더라도 외국 대기업을 유치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이제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고, 동남아 쪽으로 많이 갑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인건비도 싸고, 중국에 가까우니 우리나라에서 생산해서 중국에 수출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합니다. 경제의 흐름이라고 봐야 합니다. -자동차와 조선이 주저앉으니 수 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경제가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전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옛날처럼 우리 경제가 매년 10%이상 성장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도 선진국입니다. 보통국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에 가보면 48개 국가들이 연 1~2%만 성장해도 국민들이 편하게 먹고 삽니다. 우리도 옛날 같은 후진국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경제성장이나 경제흐름의 문제가 아니라, 군산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역입니다.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할까요.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금이나 개발비용 등 파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뭘 개발하면 경제가 파격적으로 성장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 경제규모가 작을 때는 정부가 투자하고 개발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경제규모가 커져서 정부의 역할이 그렇게 못합니다. -정부가 성의를 가지고 군산에 대해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역사회가 똘똘 뭉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정부도 재정절벽에 봉착해 있습니다. 정부예산이 400조원이 넘지만, 쓸 돈이 없습니다. 사회복지 등 소비적인 지출이 많습니다. 이것이 선진국형이고,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군산문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더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인가요. 시간이 치유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까. 현재로서는 정부의 뚜렷한 지원대책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이 옛날의 후진국이 아닙니다. 우리도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1~2% 성장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4~5년 뒤부터는 우리나라 인구도 줄어듭니다. 자동차 수요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옛날과 같은 경제발전은 없습니다.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다시 새만금 이야기로 돌아가서, 새만금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까요. 단군 이래 최대의 공사라는 새만금의 장점을 살려서 외국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파격적인 방법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새만금에 가보니 일본 기업들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부지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인건비와 부지가 싸다보니 일본과 미국의 투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인건비와 부지가 모두 비쌉니다. 정부가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새만금 프로젝트를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서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만금의 개발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나요. 새만금 중앙에 비응도가 있는데, 수심이 30미터입니다. 수심이 깊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신항만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물류기능과 생산기능을 적절히 잘 조화시켜야 합니다.

  • 기획
  • 이성원
  • 2018.05.31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