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경기도 여주에 사는 할머니의 만두수레
■ 시장 상인들의 금쪽같은 손녀딸, 고예진
경기도 여주의 한 재래시장. 겨울 기운이 가득한 이 차가운 거리에는 따뜻한 온기를 폴폴 뿜어내는 수레가 하나 있다. 바로 예진(6)이와 할머니의 만두 수레다. 종일 거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직접 빚은 만두를 파는 할머니. 예진이는 그런 할머니를 따라 매일매일 시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만두 장사를 하면서 여섯 살 난 말괄량이 손녀까지 돌보기가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할머니에게 시장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가장 안전한 예진의 놀이터다. 치킨 할머니가 챙겨주는 따뜻한 간식과 미용실 이모와 하는 공주님 놀이, 신발 할아버지가 챙겨주는 핫팩까지, 어딜 가든 예진이에게 애정 어린 손길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 상인들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예진이는 말괄량이 꼬마 아가씨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엄마가 된 고모 할머니
시장 상인들의 사랑둥이로 시장 상인들의 마음을 녹이는 예진이. 그런 예진이를 키우는 할머니는 사실, 예진의 친할머니가 아닌 고모 할머니다. 20여 년 전, 할머니는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혼자가 된 예진이 아빠를 친아들같이 보듬었다. 그러나 쉽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하던 예진이 아빠는 갓난아기 딸, 예진이 마저 외면해버렸다. 그런 예진이를 할머니는 늘그막에 얻은 딸이라 생각하고 품에 안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더덕 장사를 하고,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만두 장사를 하며 예진이를 키우는 억척 엄마로 거듭났다. 손녀를 볼 나이에 다시 시작된 엄마의 인생이 결코 녹록지 않지만 예진의 신나는 노랫소리, 깔깔 웃음소리, 할멈할멈~ 하며 들려주는 능청스러운 구연동화 앞에서 할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예진이 엄마가 된다. ■ 오래도록 지키고픈 예진이 옆자리
퉁퉁 부은 손발과 거의 다 빠져버린 치아까지, 어느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몸을 이끌고 할머니는 부지런히 만두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향한다. 보물 같은 손녀, 예진이 뿐만 아니라 이제는 예진의 단짝이 되어버린 할아버지도 책임져야만 하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파킨슨병과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길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힘들다. 그래서 할머니의 양쪽 어깨는 한없이 무거워만 진다. 하지만 이런 고단함을 단번에 풀어주는 게 있으니, 바로 예진의 동요 메들리다. 발랄한 예진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다는 할머니.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행복한 만큼 두려움도 커진다. 예진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혹시나 일찍 예진이 곁을 떠나게 되는 건 아닐까, 할아버지처럼 예진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아닐까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아졌다. 예진이 곁에서 하루라도 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기에, 오늘도 할머니는 잠든 예진이 옆에서 깊은 한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