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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⑦정호영 '국악예술단 고창(高唱)' 대표 - "응축된 '고창 소리'의 힘, 널리 알릴 것"

동리 신재효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국악의 고장 고창에서 지역의 이름을 걸고 국악하는 청년들. 2009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국악예술단 고창(高唱)이다. 예술단을 이끄는 정호영(32) 판소리꾼은 오로지 소리를 좇아 고창에 왔다.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소리 공부를 했던 그였다. 판소리 여섯바탕 사설을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이 수많은 명창과 함께 판소리를 영글게 한 그곳. 고창에는 응축된 소리 힘이 있었다. 여섯 살, 다섯 살 연년생 아들이 있는데요. 첫째 임신했을 때 공연을 하다가 양수가 터질 정도로 무대가 너무 좋았어요. 둘째도 만삭 때까지 공연으로 태교했죠. 정 대표는 스물두 살 때 선배의 제의로 국악예술단 고창(高唱)의 창립단원이 됐다. 수도권이나 전주만 해도 전통 판소리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이 강했는데요. 저희는 젊은 감각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퓨전 국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창은 우리가 하고 싶은 국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땅이었어요. 7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신재효와 애제자 진채선, 고창8경, 선운산, 고창읍성 등 고창의 명소인물자원을 주제로 한 창작판소리관현악곡을 만들고 뮤지컬 형식의 판소리극을 만든다. 정기연주회는 물론 국악 활성화를 위한 거리공연(버스킹), 전통 5일장 활성화를 위한 순회공연 등을 자체적으로 열며 지역에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패기와 몸으로 부딪히며 터득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2012년부터 3년간 전북도 한옥자원 야간 상설공연을 맡았다. 문예회관을 돌며 공연하는 방방곡곡 사업에도 선정돼 타 지역을 순회했다. 고창 이야기를 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군민들은 애정을 보냈다. 일반대중은 국악예술단 고창만이 할 수 있는 고창이 담긴 국악 공연에 신선함과 특별함을 느꼈다.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도 받았다. 일본 한국 국악보급협회 등이 추진한 해외 교류 공연에 매년 초대됐고, 2012년과 2016년 서울신문이 주최한 서울 석세스 어워드 국악 부문 대상도 받았다. 하지만 뚜렷한 지역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독이 됐다. 고창의 국악을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인데, 고창에 대한 이야기만 하니까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는 것에 한계가 오더라고요. 공연 중에 왜 우리 동네 와서 다른 지역 노래를 하느냐고 민원도 들어오고요. 고창군민들도 점점 관심이 시들해지고 새롭고 유행하는 곡들을 더 많이 찾으셨고요. 동시에 고정 수익이 없는 민간 공연팀이 으레 겪는다는 단원 탈퇴의 고비가 찾아왔다.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된 단원들은 결국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창단 때부터 이끌어 온 대표마저 그만두면서 단체가 해체될 위기였다. 사람이 원천인 국악에서 단원들이 10년간 맞춰 온 합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에요. 어떤 형식의 소리를 내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전달이 안 돼요. 발전은 더더욱 없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2016년부터 정 씨가 대표를 맡아 단체를 재정비했다. 정 씨를 비롯한 8명의 단원들은 고창이라는 지역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예술단의 근본적인 활동 목적이자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대신 활동 방식을 다양화했다. 어린이를 위한 판소리 뮤지컬을 만들고 국악 교육도 한다. 그는 고창의 국악의 고장 명성을 잇기 위해서는 미래 국악 향유층인 지역 어린이청소년이 국악에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씨는 국악 수업도 다시 받기 시작했다. 결국 창작의 근간은 탄탄한 전통이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국악 이론과 실기를 알려줘야 한다는 판단이다. 저희가 한창 활동할 때만 해도 창작국악단체가 전북에만 70여 곳이었어요. 지금은 5개 팀 정도만 남았죠. 10년이 지나도 생계수단이 되지 못하니까요. 저희 목표도 일단 올해만 버티자에요. 그렇게 앞만 보며 한 해, 두 해, 10년을 버텼고 지금은 그동안 꿈꿨던 고창문화의전당 상주단체도 하고 있으니 분명히 처음보단 나아진 것이겠죠. 힘들지만 매년 도전하다 보면 고창 국악을 세계에 알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2.22 21:18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⑥ 이준희 버스커즈팩토리 대표 - 버스커들의 '조력자'…"신선한 거리예술 만들어 갈겁니다"

2014년 초만 해도 전북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던 버스킹(거리 공연Busking). 이제는 전주 전북대 앞 광장, 첫마중길, 풍남문광장 등 시민들이 모여 있는 장소들에는 공연이 빠질 수 없게 됐다. 오늘날 지역의 거리 공연이 활발해지기까지는 이준희(29) 버스커즈팩토리 대표의 역할이 컸다.△거리공연은 시민이 시민 응원하는 팬 문화이준희 버스커즈팩토리 대표 역시 2009년 전북대 밴드 싱건지의 보컬기타 멤버로 음악을 시작한 공연인이다.밴드를 하면서 거리 공연의 매력에 빠졌죠. 무대 구분이 없는 거리는 누구나 공연자, 관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연, 음악은 특별한 공연장에서 유명인이 하는 게 아니라 내 주위 사람과 이웃, 지역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고, 이걸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곳이 거리라고 봤습니다.더 많은 공연자와 시민이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활동하는 밴드뿐만 아니라 거리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을 돕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거리 공연을 하다 보니 외부에서 거리 공연축제 기획 요청이 들어왔다.어느 순간 전주 거리 공연들 뒤에는 이준희 씨가 서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협업 제안이 계속되고 노하우를 쌓게 되면서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 버스커즈팩토리가 설립된 배경이다.△공연-관객 연결자, 버스키커가 내 역할그는 현재의 자신을 버스키커(Buskicker)라고 소개했다. 버스키커란 판을 벌이고 공연인들과 관객을 만나게 해주는 중간 연결자라고 보면 된다. 공연을 하는 버스커와 달리 공연 기반환경을 조성하고 생산자와 수요자가 모두 만족하는 버스킹(거리공연)을 기획한다.이 대표와 기획단으로 구성된 버스커즈팩토리는 버스키커들이 모인 단체인 셈이다. 거리공연이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연 기회를 주고 연습실장비를 빌려준다. 전주시 일대를 돌아다니며 최적의 공연 장소를 찾고, 토지 소유자와 주변 상가인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일, 공연 중 문제나 민원이 발생했을 때 원활히 해결하는 일 등도 버스키커의 몫이다.겨울을 제외하고 매주 3~5회 전북대 구정문, 전주 동물원, 풍남문광장, 첫마중길 등에서 자체적인 기획 공연을 연다. 원래 즉흥성과 자유로움이 장점인 거리 공연을 정해진 틀로 짠다는 것은 힘들고요. 저희의 역할은 공연이 더 흥미롭도록 공연자들의 순서를 조합하고 시간을 분배하는 등 정리를 해주는 거죠.또 다른 역할은 공연자와 공연자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보통 보컬, 악기 등 같은 역할의 예술인들끼리 알고 지내잖아요. 거리 공연을 하려면 보컬, 건반, 기타, 드럼, 춤 등 성격에 따라 다양한 포지션이 필요한데 공연을 하고 싶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현재 버스커즈팩토리 홈페이지에는 약 400명의 공연자(단체)의 정보가 등록돼 있다. 버스커즈팩토리 커뮤니티 안에서 활동하지 않는 일반 공연인도 등록하고 볼 수 있는데, 거리 공연을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열린 플랫폼을 만들자는 취지다.△다양한 방식 거리문화 개발할 것그의 최종 목표는 거리공연을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한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식화 된 거리공연에 변화를 줘야 해요. 신선하고 새로움이 있어야 지속적으로 관객을 확보할 수 있죠. 동시에 현재 거리공연에서 발생하는 민원이나 문제는 최소화해야 하고요.이에 따라 올해 다양한 형식의 거리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움직이는 공연장(문화배달부) 공연을 확대한다. 악기를 싣는 작은 공연장 형태의 구조물을 자동차로 끌어 이동시키는 것이다. 구조물을 탄 밴드는 거리를 돌며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큰 예산이 필요했지만 아이디어를 높게 본 후원자들 덕분에 현실화할 수 있었고, 올해도 차없는 거리나 골목을 돌며 문화를 배달할 계획이다.조용조용 콘서트는 소음 민원을 고려한 소리가 나지 않는 공연이다. 공연은 열리지만 음향은 모두 관객들이 착용한 무선헤드폰으로만 송출돼 외부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헤드폰을 착용한 관객과 예술인만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장기적으로는 공연을 음식(푸드트럭), 여행 등 타 장르와 결합해 폭넓은 거리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버스커즈팩토리를 통해 전북에 거리공연을 확산하고 안정화시키는 것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2.09 23:02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⑤박상린 익산 청년드림협동조합 대표 - 잘나가던 의상디자이너, 이젠 '청년 자립' 디자인

마치 모델 같은 청년 두 명이 전북일보사를 찾아왔다. 인터뷰를 약속한 박상린(31) 익산 청년드림협동조합 대표와 조합원인 오은수(26) 씨다. 전북대 의상학과를 졸업한 박상린 대표는 서울은 물론 유럽권 패션위크까지 진출했던 브랜드의 의상 디자이너 출신. 몸에 딱 맞는 슈트에 넥타이와 조끼, 광나는 구두. 색을 맞춘 명품 서류가방까지 그다웠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그가 스물아홉에 익산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친구들과 약속했거든요. 1억을 모으면 익산으로 내려오자. 모은 돈으로 청년 창업을 하고 우리와 같은 친구들의 수익이 뒷받침된 자립을 돕자. 디자이너 생활은 화려하고 매력적이었지만 그 당시 꿈꾸던 목적을 뛰어넘지 못했죠. 그래서 온 거예요.스물다섯에 익산의 한 문화공간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의상, 문학, 건축, 커피 등 관심 분야는 달랐지만 창업과 이를 통한 익산 청년 일자리 창출이란 목표는 같았다. 개별 활동을 통해 돈을 모은 이들 5명은 스물아홉에 다시 익산에서 만났다. 2016년 박 씨를 중심으로 한 익산 청년드림협동조합이 설립됐다.협동조합은 가장 먼저 카페 미술관을 차렸다. 원하는 활동을 위해선 거점공간이 필요했다. 공간은 개별 조합원이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졌다. 커피에 관심 많던 친구는 카페 운영에 집중했고, 의상과 다양한 예술장르를 결합하고 싶었던 박 대표는 카페에서 지역 미술인 작품을 의상에 반영한 기획전시 등을 열었다. 또 지역 미술인과 연계를 맺기 위해 카페에서 이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개인 공부작업을 하면서 조합 업무를 도왔다.핼러윈 세계문화축제, 외국인 예술인전 등 익산 젊은 친구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도 마련했다. 박 대표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특별한 기념일에 무조건 술만 마시는 게 아쉬웠다며, 젊은 에너지를 좀 더 재밌고 건전하게 발산할 놀 거리, 새로운 사람과 만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1년간 정신없이 위시리스트를 완료한 후 2017년, 박 씨를 제외한 조합 이사 4명이 바뀌었다. 협동조합 경험을 토대로 독립하거나 더 깊은 공부를 위해 진학했다.결성할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어요. 애초에 고정적인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여길 발판 삼아 안정적으로 독립하는 것, 또 그 자리엔 새로운 청년이 들어와 경험을 쌓고 독립 토대를 만드는 게 더 좋겠다고 이야기했었죠.오은수 씨를 비롯한 새 조합원들이 들어오면서 조직과 업무는 더 구체화, 전문화됐다. 문화상업 등 콘텐츠 기획과 디자인, 익산 청년들과의 네트워크가 강점. 2017년 하반기에는 익산 매일중앙서동시장 등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참여해 고고장, 귀신의집, 청년 공방 등을 기획하고 야시장 총괄 운영을 했다. 인테리어, 간판 디자인 등 전반적인 분위기도 젊게 꾸미고 시장에 입점할 청년들을 연계했다.박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청년포럼단도 구성했다. 그는 청년도, 정책도 변해야 터전이 변한다는 것은 이미 수도권에서 익숙한 화두라며, 익산도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중앙 정부의 정책이 전북, 익산까지 내려와서 과연 익산다운 정책이 되느냐가 관건이죠. 예를 들어 뉴딜일자리정책의 경우 서울은 파트타임, 풀타임, 청년, 여성, 노인 등으로 상세하게 나뉘는데 익산은 기준이 없어요. 업무 시간이 풀타임밖에 없다보니 조절해서 자기 계발개인 업무를 할 수가 없고요. 결국 청년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2030대 15명으로 구성된 청년포럼단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도시재생, 청년 복지창업, 여성과 문화 등에 대해 공부하고 매달 한 번 정책가를 초청해 포럼을 연다. 젊은 친구들이 익산은 정보를 빨리 얻고 나누는 공론장이 없다고 하소연해요. 이제 시작이지만 익산 청년의 의견을 모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2.02 23:02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④윤지은 너멍굴영화제 집행위원장 - '헬조선'서 허우적대던 청춘, 완주서 일내다

윤지은(30) 씨가 친구 따라 강남 아닌 완주에 정착한 것은 지난해 초. 2016년 완주 외길 마을로 귀농한 대학 동기인 진남현 씨를 따라서다. 진 씨의 좌충우돌 농촌 생활에서 완주라는 도시의 매력과 가능성을 봤다. 취업난에 몸도 마음도 지친 윤 씨에겐 29년 만에 처음 온 미지의 땅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기회였다.△ 불편하지만 편안한 너멍굴 영화제지난해 9월 완주 고산면에 위치한 골짜기, 가끔 고라니와 멧돼지가 찾아와 외식도 하고 간다는 너멍굴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낯선 청년들이 여름 내내 텃밭에 고인 물을 빼고 땅을 평평하게 다지더니 대형 스크린과 텐트가 들어섰다. 윤지은, 진남현, 허건 씨 등 12명이 개최한 너멍굴영화제였다.#독립영화 #텐트촌 #프로불편러 모집 #불편한 영화제. 대놓고 불편한 영화제임을 홍보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완주 안팎에서 SNS 홍보글을 보거나 입소문을 듣고 관객 100여 명이 너멍굴을 다녀갔다. 마을 어르신들도 오랜만에 찾아온 떠들썩함에 궁금함을 품고 찾아왔다.사실 우리가 재밌자고 시작한 거였어요. 망하면 어때. 젊으니까라는 정신으로 패기 있게 시작했습니다. 관객이 올까? 지인 30여 명이나 오겠다 싶었죠.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오고 좋아할 줄 몰랐어요.바람이 불면 머리가 흩날리고 비가 오면 그대로 맞아야 하는 야외 상영장이었다. 사실 허허벌판에 대형 스크린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꼴이니 상영장이라고 칭하기도 다소 민망하다. 그런데 관객들은 무척 좋아했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고 했다.윤 씨는 텐트를 치고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영화를 보는 게 요즘 도시 사람들에게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인위적이지 않은 진짜 휴식을 누리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흙수저 청춘의 패기, 인정받다가장 먼저 완주에 내려와 토대를 다진 진남현 씨가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허건 씨가 영화를 섭외하는 프로그래머를 맡았다. 전반적인 기획과 실무는 윤지은 집행위원장이 진두지휘했다. 이 외에 김다정, 김다래, 조재근, 권익현, 김솔지, 조은미, 고광재, 김현지 씨가 너멍꾼(영화제 집행부)으로 힘을 더했다. 허건 씨를 제외한 대부분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이들은 취업난이 심각하고 삶이 팍팍한 요즘, 뭔가 우리 청춘에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허건 씨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영화제 모습들을 다큐멘터리 불편한 영화제로 촬영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궤도를 잠시 벗어난 시도와 의미 있는 이 딴짓의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아무도 안 온 텅 빈 상영장을 찍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죠.가진 것은 몸뿐인 흔한 흙수저 청춘들은 제작비 충당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대중에게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이다. 한 달도 안 돼 목표 금액 8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불편한 영화제가 오는 3월 열리는 2018 인디다큐페스티벌 국내신작전 상영작에 선정됐다.인정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너희들만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아직 낭만을 꿈꾸는 많은 청춘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라고.△궤도를 벗어나도 괜찮아, 헬조선 일탈구 되길귀촌을 결정하고서도 고민이 많았던 윤 씨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남현 씨 등 완주 청년들을 보면서 회사에 입사해 월급을 받지 않아도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지방 소도시에서 귀농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윤 씨도 다른 청년들처럼 과 생활도, 대외 활동도,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와 자격증 취득도 어느 것 하나 놓칠세라 허덕였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헬조선에서 청년들은 더욱 위축되고 좌절감에 빠졌다.너멍굴 영화제는 처음으로 맛본 성취감이었다. 소중하게 대해준 지역과 지역 사람들이 고마웠다. 영화제는 올해도 이어진다. 규모와 콘셉트는 유지하되 음식 판매, 마켓 운영 등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완성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영화제를 자체적으로 배급할 상영회도 활발히 열기로 했다. 윤 씨 개인적으로는 올해 완주군에서 만들 청년 거점 공간에 들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너멍굴 영화제가 청년들의 오아시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경쟁 사회에 젖어 있던 제가 여기서 즐겁다는 감정, 함께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다른 청년들도 숨통이 좀 트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며 시야를 넓히고 힐링이 됐으면 좋겠어요.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1.26 23:02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③ 장재영 순창 ‘카페 방랑싸롱’ 대표 "재밌는 콘텐츠로 꽉 채운 순창 만들고 싶어"

순창 공용버스정류장에서 순창 군립도서관 방향으로 5분가량 걸으면 한옥 담벼락 길에 들어선다. 샛길 안을 기웃거리다 보면 파란 대문과 창문, 화려한 색과 사진들로 꾸며진 이국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장재영(42) 대표가 운영하는 순창의 뜨는 공간 카페 방랑싸롱이다.△뭘 해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던 곳서울에서 나고 자란 장재영 대표는 15년 넘게 여행사에서 근무하며 세계를 돌았다. 색다른 풍광과 문화가 가득한 해외와 비교하면 단조로운 한국 소도시 풍경은 흥미를 끌지 못했다.2016년 6월 추천을 받아 순창의 오래된 한옥 금산여관을 찾아 왔을 때 허를 찔렸다. 순창에 처음 온 순간 느꼈어요. 여긴 파리지옥이다.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나가기 싫더라고요. 왜 타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고민해보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순창에 남기로 했어요. 재밌는 아이디어가 많고 또 순창이 좋았으니까요.금산여관 대표와 마음이 맞아 여관방 하나를 개조해 카페 방랑싸롱을 탄생시켰다. 첫 만남 후 3개월 만이다. 저는 당시 한국에 있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제가 살 곳을 찾아다닌다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제가 꿈꾸는 것을 사람들과 재밌게 할 수 있는 토대를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순창은 백지장 같은 곳이니 뭘 그려도 실패하진 않겠구나하고 긍정했죠.△재즈 즐기러 찾는 순창을 만들다방랑싸롱은 범상치 않은 공간과 주인의 생김새에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6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카페지만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는 물론 순창 대표 관광코스가 됐다.그는 공간은 마련됐으니 지역민과 외부 방문객이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제대로 된 콘텐츠가 있으면 지역과 거리, 인프라에 상관없이 보러온다는 게 그의 지론.재즈 페스티벌 보보(BOn VO yage) 순창이 첫 결과물이다. 고령화된 시골에선 록이나 레게보다는 재즈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고 고즈넉한 한옥과도 분위기가 어울린다는 판단이다.지난해 5월과 10월 두 차례 열었다. 탁PD의 여행수다 팟캐스트 녹화, 재즈공연, 벼룩시장 등 행사를 꽉 채운 2박 3일 코스로 진행했다. 수도권과 거리가 멀고 주변에 젊은층이 즐길 것이 적다보니 머리를 쓴 전략이다.행사 두 번 동안 티켓이 총 600장 팔렸다. 최소 600명 이상이 순창에서 밥을 먹고 물건을 산 셈이다. 200명 가까이 숙박을 해 읍내 숙소들은 만실이었다. 로이, DK재즈밴드, 순창음악인협회 등 전북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참여했고, 순창 꽃집카페시장 아주머니들도 벼룩시장에 초대했다. 건전한 소비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방문객도, 순창군민도 반가운 재즈였다.△다양한 지역 자원 엮어내는 게 목표재즈페스티벌 보보순창은 매년 이어간다. 올해는 그가 진로 탐색 멘토로 활동했던 순창 청소년센터 학생들과 지역 음악인들이 단독 공연을 하는 등 순창과의 교류를 확대했다. 올 축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운영이 안정화되면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기획을 넘겨줄 계획이다.순창에서 뭔가를 성공시켜서 유명세를 얻기보다는 제가 재밌는 걸 하고 싶어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과 다 함께 즐겁고 싶고요. 보보순창 말고도 제가 해야 할 아이템은 무궁무진해요.그는 SNS를 기반으로 한 지역 콘텐츠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근대상이 간직돼 있는 순창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마을 어르신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순창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 커피와 다국적 음식을 자랑하는 방랑싸롱을 거점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노인과 한국 이주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 등도 장기적인 목표다.그리고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기본은 청년이 모여야 한다는 것. 지역과 공감대 없는 혼자만의 활동은 발전도 의미도 없다. 방랑싸롱에 있으면 저는 순창 청년을 다 보는데, 지역에 젊은 사람이 없대요. 그동안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공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난 청년들을 연결해주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1.19 23:02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② 김인애 청년활동가 - '커뮤니티 밥집'서 지속가능 시골살이 꿈꿔

저짝 건너 동네에 너희랑 나이가 비슷한 또래가 산다더라.지리산 뱀사골로 알려진 남원 산내면. 김인애(25) 씨는 부모님을 따라 이곳에 정착한 귀농귀촌 2세대다. 청년이 귀한 작은 농촌이기에 마을 어르신들은 흩어져 있는 젊은 피들을 훤히 꿰고 있다. 김인애 씨를 비롯해 어르신들이 짝지어준 청년 열댓 명은 자연스럽게 뭉쳐 밥 먹고, 공부하고, 놀았다. 비영리단체 작은 자유는 2014년 6월 이렇게 시작됐다.△청년이 농촌에서 꿈꾸는 작은 자유저희 역시 기본소득, 주거, 취업과 여가 등 흔히 말하는 청년 이슈가 고민이었어요. 친목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이 시골에서 지속가능하게 살 대안을 직접 찾아보자는 마음이 모였습니다.기본소득 연구 모임부터 시골 청년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토크쇼, 전북 청년들과의 네트워크 모임, 집 없는 청년이 움직이는 집을 끌며 산내를 누비는 청년주거 프로젝트 등 해볼 수 있는 건 다 벌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이들이 가진 책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한뼘 책장, 산내 청소년을 위한 진로탐색 축제 내일탐험대, 인문학 초청 강연과 음악회 등 문화교육 활동도 활발했다. 그중 가장 크고 긴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밥집-살래청춘식당 마지였다.△청년 모두가 공감할 열정과 시도, 위기2015년 8월 문을 연 살래청춘식당 마지는 기회가 없음을 불평하기보다는 스스로 자립과 성장의 기회를 만들려는 첫 시도였다. 청년 거점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어느덧 몇몇은 직장을 찾아 떠났거든요. 우연히 식당 자리가 비었고, 평소에도 같이 만들어 먹는 걸 좋아했으니 덜컥 식당을 하게 된 거죠. 음식과 재밌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산내 그리고 전북 안팎의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는 공간이요.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기대가 컸다. 식당엔 주민들의 손길애정이 가득했고, 농촌에 청년을 유입시킬 일종의 모범 사례처럼 알려졌기 때문이다.살뜰히 운영했지만 어느 순간 주객전도 됐다. 메뉴 개발, 식당 서비스 등 완성도에 대한 외부 요구가 많아졌다. 끝없는 의견 충돌과 회의, 노동이 연속인 일상. 좌충우돌고군분투의 만 2년이었다. 마지는 목표를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어요. 청소년들이 보고 이곳에 남을 수 있는 대안적인 모델이 됐으면 하는 야망도 있었죠. 한데 식당 운영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건강도, 사람도 챙기질 못하게 됐어요. 균형이 무너진 거죠.5명으로 시작해 2명이 떠났다. 지속가능한 대안 구축이 궁극적인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고 지친다면 식당을 계속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이 이어졌다.△2년간의 마지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결과적으로 식당은 지난해 8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동정이나 실패라는 시선은 거두어 달라다. 돈을 벌기 위해 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2년 간 식당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부적으로 대화를 하면서 각자의 막연했던 패기열정을 구체화하게 됐다. 식당을 함께 운영했던 임고운별(23) 씨는 아동청소년 인권상담에 관심이 높아져 관련 학업업무를 하고 있고, 하진용(25) 씨는 남원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김인애 씨는 꾸준히 강조하던 청년주거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스스로 일궈본 경험은 자양분이 돼 다양한 종류의 싹을 틔웠다.끝이 아닌 과정이기에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공감대를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정담회를 마련해 주민들과 마지의 미래를 논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약하려는 발돋움에 응원을 보냈다.거점 공간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장기적으로 마지는 산내 청년을 위한 교류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 계획이다.△ 청년 주거복지 실질적인 정책 필요 ▲ 전북청년들과 청년주거프로젝트-쟝자크의 움직이는 집을 위해 이동식 집을 만들고 있는 모습. 김 씨는 청년 귀농귀촌을 통해 대안적 삶을 찾고자 한다. 마지를 운영하면서도 동료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계속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토양을 함께 일굴 더 많은 친구들이라며, 가장 시급한 것은 주거환경 개선이라고 강조했다.집이 부족해 아무 기반 없는 청년은 지역에 들어와도 당장 살 수가 없어요. 작은 자유에서 하나의 주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도 해봤지만 민간의 힘으론 역부족이더라고요. 자치단체가 나서서 제도화하고 실행해야 해요. 앞으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마을이 처해있는 현재의 문제입니다.또 전북 청년이 아닌 시군 환경에 맞게 사는 각기 다른 청년이 있음을 피력했다. 전북도청에서 간담회를 하면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왕복 세 시간이 걸린다. 교통편,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은 이들은 찾아가는 것부터가 노력인데,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어디야라는 식의 이해소통 없는 관의 태도엔 의욕이 떨어진다.그는 이상적인 정책보다는 청년을 데려와서 어디서 재우고 어떤 일을 시켜 어떻게 인건비를 줄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고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1.12 23:02

[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① 송지용 문화운동가 "모두가 수평적 삶 사는 생태적 공동체 만들고 파"

전북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외치는 청년들이 있다. 문화로 내가 머무는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전북의 젊은 문화 운동가들. 상당수의 2030대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날 때 이들은 지역에서 대안을 찾는다.도내 곳곳에 침투해 흥미로운 작당모의를 했다. 산골과 농촌에는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는 핫(hot)한 여관카페가 생겼고, 그 앞마당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아픈 청춘, 자아를 찾기 위해 명상 댄스와 살풀이를 무료로 배우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공동체 파티는 취업난에 낮아진 자존감을 치유했다.전북은 더 재밌고 젊어지는 중이다. 문화운동으로 지역 부흥기를 일으킨 전북 청년들을 매주 한 차례 만나본다.요새 친구들 중 가장 재밌는 걸 하는 놈 지역에 꼭 필요한 청년 마인드가 참 괜찮은 사람. 정읍에서 나고 자라 정읍익산 등에서 활동하는 송지용(29) 씨다.지난해 말 겨울 방학으로 한산한 원광대 앞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문화기획자보다는 문화운동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가 항상 주장하는 내 색깔대로 조화롭게. 지역에서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활성화하기 보다는 이를 매개체로 내 고향, 그 안의 공동체가 잘 사는 것이 정읍 청년의 목표였다.△사회적 기업공동체 마을서 얻은 깨달음군대에 있을 때 TV에서 사회적 기업 이음이 정읍에서 전통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소식이 나왔어요. 내가 사는 곳에도 인디현대 문화를 누릴 수 있겠구나. 희열을 주체 못했죠.스물세 살 군대를 갓 제대하자마자 정읍으로 돌아와 사회적 기업 이음에 들어갔다. 수평적인 구조에서 사람을 만나고 아이디어를 냈던 이상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수직적이고 후진적이었던 행정 구조와 지역의 폐쇄성은 1년 만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 떠나게 만들었다.추천을 받아 떠난 인도 오르빌과 사다나 포레스트에서 새로운 마을 공동체의 대안을 봤다.인구가 2000명 정도 되는 남인도의 영성공동체 오르빌은 돈, 권력, 성별, 인종에 차별받지 않고 생태적인 삶을 사는 곳. 건축, 공동체 슈퍼, 대안적 식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 사회를 바꿀 대안을 실험했다. 그 안의 사다나 포레스트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로, 일종의 숲 가꾸기를 통한 수행이다.이곳에선 자율이 곧 규율이었죠. 완전하진 않았지만 개인의 자유성을 보장하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였어요. 오르빌이 영성에 대한 공감대와 생태적인 문화 등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인도의 대안이 된 것처럼, 정읍도 대한민국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고집했던 정읍, 생태적 대안 제시세계를 누비던 그는 왜 고집스레 정읍에 돌아왔을까.저도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우등생이 아니에요. 낙후된 지방 도시에서 자랐고 수도권에 있는 좋은 대학에 가지도 못했죠. 하지만 정읍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놀던 공간, 추억이 있는 곳이고, 지금도 내가 사는 곳이에요. 인도에서 나라는 인간도, 정읍이라는 지역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약점을 강점으로, 변방을 창조의 핵심으로 만들 겁니다.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기에 하는 것이지, 대의를 위한 막중한 사명감은 아니다. 과거 사회문화 운동이라고 하면 희생투쟁을 떠올렸지만 지금의 운동 패러다임은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로 연결되는 운동. 이게 지속가능하고 내가 더 오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3년 전 그는 고향 정읍의 청년을 중심으로 고스트 미팅 클럽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존재감 없는 유령 취급 받는 젊은이들이 유쾌하게 뭉치자는 취지다. 전북 청년 포럼 형태로 정기적인 모임을 이어가며 청년의 일거리, 배울거리, 놀거리를 만들었다.그는 청년 문화 기획에서 나아가 꿈꿨던 생태적인 대안을 지역에 알리고 싶었다. 그 시도가 지난해 프리플로우와 있ㅅ는 잔치다. 프리플로우는 독일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을 정읍으로 초청한 것으로, 정읍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있ㅅ는 잔치는 그가 속한 넥스트젠 코리아 국제생태마을청년네트워크 활동의 일환으로, 삼일 간 오르빌처럼 명상영성 대화공연생태적인 생활 영위 등 자유로운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전북 르네상스 이끌려면수용성철학 필요그는 지역에 청년들이 뿌리내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다양한 활동가들이 자리 잡는 토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자리여가생활 부족 등을 해결하려는 사람과 실험을 하고 싶은 사람, 외부에서 새롭게 오는 활동가 등 다양한 부류의 청년이 있는데 지역 텃세 등에 튕겨져 나가서는 안 된다. 전북 전체로 뭉뚱그려지기 보다는 다양성이 수용돼 14개 지역별로 개성이 살아나야 비옥해진다.또 그는 정책에 청년이 동원되고 소모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청년 문화 활동을 하면서 언제부턴가 공허해졌다. 사업 이름만 바뀔 뿐 매번 같은 것을 하고 확고한 목표나 중심은 없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청년들이 자아탐색을 하고 단단한 철학을 기반으로 한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때 만난 것이 댄스 만달라. 명상 체조라고 보면 된다. 그는 몸과 마음은 하나여서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다보면 내 숨과 감각, 에너지를 따라 내면으로 들어간다며 자기애와 희열, 지혜가 올라오고 자신이 확장된 것을 느낀다. 시작할 때와 달라진,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더 커진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댄스 만달라를 전파하기 위해 매주 전주에서 수업도 연다.최근에는 동학을 공부하기 위해 원광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안적 사상으로서의 동학 가치를 높게 보고, 이를 몸짓교육에 접목해 현대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인도유럽태국 등의 생태 주의, 여성주의, 공동체 사상이 우리나라 동학의 평등인간존중 사상 등과 맥을 같이 해요. 우리 식의 생태 공동체와 대안을 만들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해요.

  • 문화일반
  • 김보현
  • 2018.01.02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