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에 처음 성사된 동서독 정상회담은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동서독 정상회담은 상호 실체를 인정하면서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서독 정부는 67년 루마니아와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과거 동독을 비합법 국가로 간주하고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했다. 이후 서독은 동독에 대해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동서독 정상회담의 실마리는 `동방정책'의 주창자인 빌리 브란트가 지난 69년 10월 서독 총리에 취임하면서 비롯됐다. 브란트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 외국이 아니다. 두 국가는 단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소위 `2 국가론'을 제기했다.
브란트 총리는 동서독 정상회담, 소련과 무력행사 포기 협정 체결,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대동독 정책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조약으로 규율되는 협력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차원의 협상을 동독에 제의했다. 이와 함께 서독 정부는 동유럽에서 소련의 주도권을 고려해 모스크바 정부에 양해를 구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70년 1월 서독과 소련은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무력포기에 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았다.
이어 브란트 총리는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에게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회담을 제의했다. 동독은 이미 67년 서독측에 동서독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제의한 바 있기 때문에 서독측의 제의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양측은 준비회담 과정에서 회담 장소와 취재단 규모 등으로 이견을 보이기도 했으나 서독측의 적극적인 자세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국내적인 준비와 국제적인 정지작업을 거쳐 드디어 70년 3월 19일 동독 지역인 에어푸르트에서 브란트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간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에어푸르트에 도착한 브란트 총리는 동독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아 그의 통일정책이 동독인들에게도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분단 25년만에 실현된 동서독 정상회담은 국민들의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성과없이 끝났다. 이어 5월 21일 서독의 카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별다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실무차원의 접촉을 계속하기로 약속하는 선에서 회담을 종결했다.
70년의 첫 정상회담은 기존의 동서독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으나 양독 정상의 직접 대화는 상호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후 관계 진전의 밑거름이 됐다. 카셀 회담 이후 실무접촉이 이어져 서독-서베를린간 통과협정, 동서독 교통협정 등이 체결돼 양독 교류가 증대됐다. 드디어 72년 12월에는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돼 양독 관계의 안정적인 평화공존을 실현할 수 있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도 81년에 헬무트 슈미트 총리, 87년에 헬무트 콜 총리와 에리히 호네커 동독공산당 서기장간의 회담이 각각 열렸으나 특별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87년 회담에서는 동독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호네커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89년 동독인의 서방 탈출 러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해 12월 콜 총리와 한스 모드로프 동독 총리간의 정상회담이 열려 통일 문제에 급진전을 보았다. 이후 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될 때까지 4차례 정상회담이 더 열려 통일을 완성하는데 정상간의 만남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동서독은 지난 70년 이후 9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정상회담이 실현된지 20년만에 통일을 이룩했다.
서독은 동독과의 지루한 협상 과정에서 여행자유화와 상호방문 기회를 확대하고 동서독간 인적, 물적 교류의 확대를 일관되게 추진했다. 비록 초기의 정상회담 과정에서 획기적인 정치적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장기적으로 추진한 상호 교류의 증대는 동독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초래했으며 이것이 통일의 원동력으로 작용, 통일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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