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거리 풍경 중의 하나가 바로 엿장수가 아닌가 싶다. 엿판을 싣고 거리와 골목을 누비며 쩔꺽거리는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는 이제 듣고 싶은 추억의 소리가 되어 버렸으며, 엿장수의 큰 가위는 골동품점이나 민속박물관에서나 찾아 봐야 할 판이다.
또한 가래엿을 꺾어 구멍의 크기를 가려서 승부를 정하는 엿치기는 엿이 딱딱해지는 겨울철에 즐겨하던 놀이이기도 하였다. 엿구멍을 비교하여 제일 작거나 전혀 없는 사람이 지게 되는 데 이 사람은 그날 엿값을 모두 물게 되는 것이다. 이름하여 '똘똘말이'인 것이다.
겨울철이면 특히 인기가 있었던 엿이 언제부터 식품으로 우리 곁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곡류를 기름에 튀기고 꿀이나 엿을 사용하여 만든 과자가 고려시대의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 이전부터 엿이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지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여지승람’에 '행당맥락(杏 麥酪)'이라는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당( )은 단단한 엿이고, 낙(酪)은 감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를 볼 때에 고려시대에는 엿기름을 사용한 엿이나 감주가 이미 감미료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엿은 세찬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각 가정에서 엿을 만들어 상비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각 가정이나 지방에 따라서는 독특한 엿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옥수수로 만든 황골엿, 울릉도의 호박엿, 충청도의 무엿, 평창 지방의 쌀엿, 전라도의 고구마엿 등이 유명하였으며 제주도 지방에서는 엿에다 닭이나 꿩의 고기를 넣어서 만든 닭엿이나 꿩엿도 있었다.
최근에 우리 고장 장수에서는 우리 농산물을 살리고 농한기 농촌 여성들의 유휴노동력 활용과 농가소득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전통 쌀엿 가공공장을 설립키로 했다고 한다. 인심이 메말라 가는 이 때에 한 겨울 사랑채에서 훈훈한 정담을 나누며 엿을 나누어 먹던 끈끈한 인정도 함께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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