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위대한 미국인(美國人)들의 ‘유연성’과 ‘이중성’에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연말 전세계는 재검표와 법정다툼을 거듭하는 혼란스러운 미국 대선 개표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가 만개(滿開)한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또 결과는 어떻게 도출해낼지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제를 일으킨 플로리다주 선거는 총체적으로 부실, 한국적 시각으로 본다면 원인무효나 다름없는 선거였다. 잽·W·부시 주지사는 조지·W·부시 후보와 친 형제인데다 후진국에서나 있음직한 투표용지와 투표기계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이애미 해럴드지는 죽은 사람, 무등록자, 투표권 없는 중죄인까지 투표를 했다고 폭로하고 나섰고 수작업 검표를 명령한 주대법원과 이를 중지시킨 명령을 내린 연방 대법원의 판결도 4대3과 5대4의 아슬아슬한 표차였다.
극도로 혼탁하고 격렬해서 증오심까지 불러일으킨 선거였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앨·고어 후보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를 인정한다”고 선언하고 “부시 당선자에게 연설 직전 축하전화를 했는데 이제 또다시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좌중을 웃기는 여유까지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날 CNN과 USA 투데이·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렇게도 양쪽으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던 미국 국민의 80%가 “부시를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응답한 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떠했을까. 과문인지 모르지만 헌정중단사태가 야기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실추구가 사회일반의 가치로 자리잡은 미국, 그러나 그들은 명분과 실리중 실리를 택했고 세계의 우려와는 달리 모든 것을 ‘상식’이라는 힘으로 해결해냈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세계의 맹주노릇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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