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이 충격으로 그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총리가 탄생하는가 싶었다. 7월의 마지막날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장상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기 전까지는.
따라서 장 총리서리는 ‘서리’ 꼬리표를 달았던 21명의 역대 총리 중 한 명으로 남게 됐으며, 6공 이후 처음으로 서리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고 퇴장하게 됐다.
남성들의 편견과 우위가 강세를 떨치는 한국에서, 여성은 지도자가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남성들이 세워놓은 검증의 문을 통과하기에 역부족이었음을 반증해주었다.
장 총리서리의 임명은 여성계에 여성의 고위직 진출과 사회참여 확대에 대한 기대를 넘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전국민의 역할 모델이 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었다.
장 서리도 국회 인사 청문회장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밝혔듯, 여성총리의 등장이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고, 21세기 선진국가로의 발전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와 관련해 장 총리서리는 매우 중요한 실험의 대상이 돼 있었다.
처음부터 여성총리 흔들기
첫 여성총리 임명을 두고 생색내기라는 비아냥거림 부터 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장 서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여성총리 흔들기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국회 인사청문회가 만만치 않을 것임이 일찌감치 예고된 터다.
대통령직 유고시 국방을 모르는 여성 총리에게 어떻게 국방을 맡길 수 있느냐는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망발이 있더니, 총리직이 너무 중차대한 자리이기에 또 정치나 행정에 익숙한 인물이 아니기에 장 총리서리는 총리로서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 논리도 횡행했다.
남성 총장이 총리가 될 때는 말이 없다가 여성 총장이 총리가 되니 행정 경험이 없다고 탓하는 것은 성차별 의식에서 나온 발상에 다름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아들의 국적, 학력 기재, 김활란 추모행사, 친한 친구들과 공동으로 취득한 땅과 관련한 시비 등에 관해 장 총리서리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응한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
여성에 인색한 정치무대
우리 정치계는 여성이 국정 경험을 쌓을 기회를 거의 차단시켜왔다. 아니, 간혹 장관에 발탁된 여성들도 그 능력을 제대로 펼쳐 보이기도 전에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 국정에서 미끄러져 내려와야 했다.
2000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낸 정책보고서에는 정치 및 공공분야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가 높은 나라일수록 부패 정도가 낮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간하는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이 정치 경제활동과 정책결정 과정에 얼마나 적극 참여하고 있는지를 점수로 환산한 ‘여성권한척도(GEM)’에서 우리나라는 96년 1백4개국 중 78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64개국 중 61위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에는 여성 대통령과 여성총리가 흔하다. 또한 국방의 책임을 맡고 있는 여성도 많다. 핵강국 프랑스의 국방장관은 미셸 알리오 마리란 여성이다. 군사대국 러시아의 국방차관도 여성인 류보비 쿠텔리나이고, 늘 교전상태인 이스라엘도 여성인 달리아 라빈 펠로소프를 국방차관에 임명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국가안보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도 콘돌리자 라이스란 여성이다.
21세기는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함께 가는 사회가 돼야 한다. 어떤 분야든지, 권력과 자금이 몰리는 분야라면 더구나, 한 쪽 성(姓)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으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허명숙(본사 특집, 여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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