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문제가 들먹여질 때마다 역대 통치자들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결코 소홀히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분권’과 ‘지방이양’은 귀가 아프도록 강조돼 온 말들이고 대기업 본사나 수도권 대학의 지방 이전에 대한 세제혜택,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청와대 직속기구설치 등 제도적인 시책도 많이 다뤄졌다.
인구유입억제, 공장총량제, 토지이용규제, 대학정원규제 등 머리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아이디어 역시 수도 없이 나왔다.
그러나 빈껍데기뿐인 지방의 오늘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지방에 대한 이해나 문제해결에 대한 철학이 올곧게 박혀있었는지 의구심이 인다.
지방의 문제 속고 또 속아
시책이나 의지의 표현은 많았지만 모두 사탕발림이었는지 수도권 집중의 블랙홀 현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수도권 면적은 남한 인구의 11.8%에 불과한데도 2천2백여만명의 인구가 몰려 있다. 전국인구의 47%가 집중돼 있고 오는 2011년이면 51%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정치도, 행정도, 교육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도 모두 수도권 일극(一極)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결과 수도권에서는 교통난, 환경오염, 주택부족, 난개발의 문제가 심각하고 이런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지방에서는 자금이란 자금은 모두 서울로 빨려들어가고 각종 기회의 결핍에 따른 좌절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사람도 서울로 모이고 돈도 서울에서만 도는 상황이니 지방은 빈 껍데기의 몰골만 남아있는 꼴인데 그런 처참한 외형도 문제려니와 자기비하와 체념 등 심리적 피폐현상이 더 큰 문제다.
이런 형국에 대선주자들이 5년전에도 그랬던 것 처럼 각 지역을 돌면서 지방문제에 대한 처방전을 띄우고 있다. 행정수도의 지방이전, 지방대 출신의 공직할당제, 대기업본사 지방이전, 정부와 자치단체 공기업의 지방대 출신 채용목표제 등 지방의 입맛에 맞는 단골메뉴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재건펀드’ ‘국가균형원’ ‘지방재정형평기금’ ‘과세 자주권제도’ ‘지방분권특별법’ 추진 등 표심을 얻기 위한 아이디어들도 백화점식으로 진열되고 있다.
대선후보들의 입놀림을 보면서 과연 이런 약속들이 지켜질까,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무슨 돈으로…, ×눈 후에는 다를 걸 등등의 상념이 교차하는 건 그동안 너무 많이 속았기 때문이리라.
그같은 처방은 ‘어떻게’의 방법론이 빠져있기 때문에 공허한 것처럼 보인다. 실천의지나 방법은 지방의 정서와 문화를 체험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강력한 것이다.
시책나열보다는 방법론 제시해야
취직원서를 냈지만 지방대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한 지방대 출신의 좌절감, 쥐뿔도 없을 망정 기를 쓰고 자식들을 서울로 보낼 수 밖에 없는 가난한 부모들의 억눌린 심정, 일거리와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산업예비군들의 분노, 노동의 고강도속에 저임금에 시달리는 지방 노동자들의 생기없는 눈빛 등등.
지방의 문제, 지역주민의 이러한 정서를 체험하지 않고 선거캠프에서 쏟아내는 시책들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처방전이라면 또 속을 게 뻔하지 않겠는가.
지방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이해, 그리고 아픔에 대한 체험의 공유가 전제되지 않는 약속이라면 ‘니들이 지방을 알어?’라는 우격다짐식 손가락질을 받기 마련일 터이다.
전시성 짙은 시책나열보다는 지방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방법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눈길을 주자.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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