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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이미지 권력

 

대량으로 유통되는 여성지들은 매호마다 다이어트에 관한 기사를 싣는다. 그것도 상당한 분량이 편집되어 마치 그것이 유행인가보다 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 보니 유행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 있나보다. 다이어트는 몸이 느끼는 시장기를 훈련시킨다. 식욕은 늘 이것에 의해 감시당하고 지독한 의지에 의해서 억제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유행병처럼 된 신경성 거식증은 병적일 정도로 널리 퍼진 문화적 강박관념의 산물이다. 다이어트와 신경성 거식증이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따져볼 일이나 다이어트는 날씬함의 사회적 요구에 시달리는 몸에 가해지는 훈련임에는 틀림없다.

 

독일의 사진작가 벡스(Marianne Wex)는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통해 전형적인 여자의 신체적 자세를 분석하였다. 여자들은 양팔을 포개어 몸과 밀착시키고, 양손을 포개어 가지런히 무릎에 올려놓으며, 두 다리를 서로 붙인 자세로 앉아있다. 이 모습은 버스,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서 볼 수 있는 일반 여성들의 모습이다. 스스로를 작고 좁게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성들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무엇이 여성들의 자세를 이렇게 통일되게 하는가? 혹시 누군가 훈련을 시키는 것은 아닌가? 여성적인 몸을 생산해내는 훈련의 관행을 생각해보면 일정한 크기와 일반적인 외모의 몸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고, 몸으로부터 요구되는 구체적인 몸짓, 자세, 동작들이 있는 듯하다. 또,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대한 관행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여성의 몸을 훈련시키는가? 여성의 몸에 여성성을 새겨 넣는 훈련을 하는 권력은 모든 곳에 있으며, 한편으로 아무데도 없기도 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훈련관은 모든 사람이지만 꼭 집어 말하면 또 아무도 아니다. 여성성의 훈련관행들이 종속되고 억압된 즉, 열등(작고, 날씬)한 모습으로 몸을 재생산해내는 한 그것은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권력적 작용이다. 그리고 그것에 많은 여성들은 훈련이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의 행동은 과거보다 규제를 덜 받고 더 많이 활동하게 되었으며, 가정이란 공간에 덜 얽매이게 되었다. 또한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성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혼율의 증가, 증가하는 여성노동의 기회, 그리고 갈수록 세속화되는 현대적 생활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족과 유교문화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반면에 여성적인 몸의 재생산을 위한 훈련의 권력은 분산되어 있고 또 익명적이다. 게다가 훈련의 권력을 휘두르도록 공식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은 개인이나 집단은 아무도 없다. 권력은 만인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또한 특정인 누구에게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

 

근대 산업사회가 변하고 여자들 자신도 가부장제에 저항하면서 옛날식의 지배형식은 서서히 소멸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형식들이 생겨나서 퍼지고 또 굳어진다. 더 이상 여성들은 순결하거나 정숙할 것, 활동영역을 가정에 국한시킬 것을 요구받지 않으며, 심지어 여성 고유의 운명을 모성(출산)의 실현으로만 요구받지도 않는다. 이미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의 반란은 예고되었다. 표준적인 여성성은 아이를 낳는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성적 매력,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듯한 이성애적 매력과 외모에 집중되어 가고 있다. 물론, 여자들이 젊음과 아름다움에 열중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은 갈수록 시각매체에 기울어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의 위력이다. 날씬하고 관리된 여성성, 이와 같은 훈련이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퍼져 있다는 것과 평생에 걸쳐 전개된다는 것이다. 전에는 부르주아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관리된 여성의 모습이 이제는 할머니든 사춘기에 갓 접어든 청소년이든 모든 여성의 일상적인 의무로 되어버린 것이다. 파운데이션이 뭉치거나 마스카라가 번져 내리지는 않았는지 보기 위해서 하루에 대여섯 번씩 화장을 점검하고, 살쪘다는 생각에 먹는 것마다 감시하는 여자는 스스로를 단속하는 주체, 즉 가혹한 자기 감시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권력이 작용한 이미지의 반영이고 그 문화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는 안티 미스코리아 등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여성미학의 저항적 담론과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새로운 여성미학을 개발하려 노력하는 중이며 이런 노력들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젊고 가냘픔과 동일시하는 억압적 상황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냘픔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 날마다 여성의 몸에 새겨 넣는 문화적 의미를 읽을 줄 알게 되면, 여성들은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다시 보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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