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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 겨울, 남부시장의 새벽풍경.

"이렇게 즐겁지 않으면 한겨울 신새벽에 장사 못나오지"

어슴프레 했던 어둠도 차츰 가시면서 파장하는 시장 풍경이 정겨움으로 더 다가오는 전주 남부시장.../안봉주기자 안봉주([email protected])

이른 아침 7시. 전주 남부시장이 맞닿은 전주 천변은 좌판 벌인 상인들이 늘어섰습니다. 어슴프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이미 시장은 끝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떨이’ 하느라 몇몇 아주머니들은 손놀림이 분주해졌습니다. 아직 ‘마수’도 못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샛노란 단무지가 아직도 가득차있는 통안을 뒤적이며 ‘오늘 좀 늦었던 탓’이라 자책합니다.

 

남부시장 새벽 좌판의 대부분은 먹거리가 주류입니다. 채소, 어물, 과일, 건어물, 반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팔거나 팔리기 위해 나온 사람들과 물건들은 장보러 나온 사람들의 눈에 띠어야만 팔릴 수 있습니다.

 

손님 끌기 위한 특별한 비법이 필요할 법한데도 새벽장에 나온 사람들은 서로 많이 팔겠다고 앞서지 않습니다. ‘성님’ ‘동상’ 인연 맺은지 이미 오래된 시장 아주머니들은 웬만한 일에 얼굴 붉히지 않습니다. ‘성님’이 자리 비운동안 손님이 들면 ‘동상’이 물건을 팝니다. 그 물건이 내가 파는 같은 종류일지라도 손님 채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루 이틀 장사하는 것 아닌디 나만 팔것다고 그렇먼 쓰간디?” 올해 쉰다섯됐다는 이씨 아주머니가 곱게 눈을 흘깁니다. 벙거지 뒤집어쓰고 마스크에 털목도리까지 칭칭 동여매어 빼꼼하게 눈만 내보이는 아주머니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이 예쁩니다.

 

남부시장에서 완산동으로 이르는 매곡교도 좌판이 메웠습니다. ‘조미료는 하나도 쓰지않고 자연 그대로 담갔다는 밑반찬’ 으로 좌판을 연 김씨 아주머니의 신세타령이 이어집니다. 새벽 다섯시에 나왔지만 두시간이 넘게 어느것 하나 팔지 못한 서러움 탓입니다.

 

봉동에서 축산업을 하며 제법 살만했다는 김씨 아주머니는 “사람 돌라먹을라고 눈돌리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은 부도를 맞아”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중앙시장을 거쳐 남부시장으로 온지 7-8년. 10년, 20년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새잽이’입니다. 올해 환갑을 맞았다는 아주머니는 좀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고생스러워도 ‘내것 벌은 만큼 먹고 살 수 있으니 마음은 편한’ 덕분인가 봅니다.

 

“빈손으로 리어카 끌고 길가에 나앉아 봐. 누구라도 동냥치 안되나.” 김씨 아주머니는 끝내 눈물바람입니다. 첫 손님이 왔습니다. 단골입니다. 고춧잎 2천원어치, 깻잎 2천원어치. 만원짜리 내고 6천원 거슬러받던 단골은 성큼 6천원짜리 청국장 덩어리를 짚어들며 말합니다.

 

“우리집 아저씨가 이집 반찬 아니면 맛이 없다네.” 김씨 아주머니 얼굴에 활짝 웃음이 퍼집니다. “아 내것은 조미료 같은 것 안친당게. 이것 자연 그대로여. 어디 저 큰 시장가봐. 이런것 있는가.” 곶감파는 이웃 ‘동상’도 “암만, 이집것이 제일 맛있어” 한 수 더합니다.

 

커피파는 아주머니는 흥얼흥얼 입에 노래 달고 있습니다. “장사도 잘 안된다면서 즐거우세요?” “그럼. 이렇게 즐겁지 않으면 장사 못나오지.” 새벽 두시부터 아홉시가 되어가는 시간, 꼬박 7시간이 지났지만 빈종이컵은 대형 쓰레기 봉투 하나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오가는 차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좌판 거두어야할 시간입니다. 지나가던 단골 손님이 파장 준비하느라 손수레 끌고 나서는 무우 장사 아주머니에게 소리칩니다. “무수언니! 인자 큰일났네. 내일 아침 신문 날거여.” 아주머니가 뒤돌아보며 말합니다. “나 얼굴만 안나오게 찍어. 자슥덜 보먼 맴 아픈게. 뒷판도 볼만혀.” 웃음 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둠이 가시고, 밝아지는 동안 한편의 정겨운 세상 풍경이 마감합니다. 인생에 이렇게 다양한 길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파장하는 시장 풍경이 이제 허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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