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초순 어느 날.
전주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부임 후 관내 지청 중에서 처음으로 정읍지청을 지도방문하였다. 10여년전 정읍지청장으로 재임하였던 시절에도 열악한 청사(廳舍)사정으로 인한 어려움이 하나둘이 아니었는데,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청사에서 아무런 불평없이 지역주민들을 위한 검찰권 행사에 애를 쓰고 있는 검사와 직원들을 보니 대견스러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하여 주었다. 귀청하는 길에는 고향인 정읍 칠보에 들려 그곳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상대로 ‘청소년의 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유달리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아니하고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한 결과, 대학에 특수장학생(입학금과 매학기 등록금 면제, 4년간 매월 생활보조금조로 일정액의 장학금 수령)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재학 중 절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는 겨울방학 3개월 동안 묵언까지 하면서 공부에 매진하여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게 되었다. 여러분들도 주변여건 중 좋지 않은 점만 탓하지 말고,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면 모두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강연이 있는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www.dongkisarang.com)에 ‘묵언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여야 하냐?’고 문의를 하여 온 학생이 여러 명 있었다. 여러 가지 강연내용 중에서 특히 묵언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학생이란 모름지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또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여야 되는데 공연이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묵언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준 것이 아닌가?’ 하고 적지 아니 당황하였다. 황급히 ‘묵언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수업에 열중하라’고 일일이 답장을 보내 주면서 학생들을 진정시켜 주었다.
각설하고, ‘잠자코 말하지 않음’이라고 사전에 그 뜻이 적혀져 있는 묵언(묵言)은 불가(佛家)에서 행하고 있는 스님들의 자기수행 방법의 하나이다. 묵언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부작위적;不作爲的) 의미가 있어 ‘뭐 별게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왠만큼 굳게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실패하기 쉽상이다. 그런데 실제로 묵언을 행할 경우 본인의 답답함보다는 주위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어한다. 묵언하는 사람이야 자신의 결심 아래 그대로 실행만하면 되지만, 주위사람은 묵언하는 사람의 생각을 모르니까 더욱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누가 묵언을 할 경우 주위의 협조가 더 필요하다.
독자 여러분들도 올 여름 휴가 기간이나 방학 중에 며칠간이나마 시간을 할애하여 묵언을 해보심이 어떨지요.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말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언어장애자들의 불편함을 가슴 가득히 느끼시어 나중에 그분들을 만나게 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실 것입니다), 스님들의 고행도 함께 체험하고, 본인의 수양도 깊게 할 겸해서….
아참, 부부나 친구끼리 말싸움 끝에 한 묵언은 본래 의미의 묵언이 아니라는 것까지 말씀드려야 되나?! 말아야 하나?! 아무튼 그러한 묵언은 아니한 것만 못하겠죠?!
/ 이동기 (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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