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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등산 유감(有感)

지난달 설악(雪嶽)으로부터 시작된 단풍능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와 이제는 한반도의 남쪽지방에 머무르고 있다.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산아가씨가 ‘어서 놀러오세요.’라고 손짓하며 부른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이산저산에 올라가 일주일의 피로도 풀고, 새로운 원기를 얻어가지고 내려오는 선남선녀들로 산행길이 막힐 정도이다. 특히 주5일 근무를 하다보니 주말의 여가활용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

 

필자는 원래 약간의 평발끼(?)가 있어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다보니 등산은 감히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1993. 3경 우연한 기회에 전주지검 군산지청 직원들과 함께 구례 화엄사에 출발하여 코재를 거쳐 노고단까지 올라가는 ‘등산다운 등산’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때 평소의 운동부족 탓인지 남들은 쉽게 올라가는 길도 필자는 너무나 힘들게 올라갔고, ‘코피를 흘리지 않고는 올라가지 못 한다’ 하여 ?코재?라고 이름이 붙여진 언덕길을 오를 때는 그야말로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코에서는 코피가 날 정도로 힘들게 올라갔다. 그랬더니 ‘이까짓 산하나 제대로 오르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인생의 험한 산을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어느 것에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성격 탓에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산에 가는 ‘산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해 여름에는 휴가가 시작되자 자동차 트렁크에 텐트와 큰 배낭, 작은 배낭에 쌀과 된장, 고추장 등 부식류, 그리고 라면과 소주 몇병을 싣고 조계산(전남 승주), 가야산(경남 합천), 팔공산(대구), 지리산(피아골, 뱀사골) 등을 돌아다니다가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국의 산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지리산(천왕봉) 11회, 설악산(대청봉) 7회, 한라산(백록담) 5회 등정에 태백산, 치악산(각 강원), 소백산, 월악산, 계룡산, 속리산(각 충청), 청량산, 주왕산, 비슬산(각 영남), 무등산, 월출산, 두륜산(각 전남)에 울릉도 성인봉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유명한 산 중에서 안가본 산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산을 가보아도 우리 전북에 있는 산만한 산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포근함에 있어서는 전국의 어느 산도 우리 고향의 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우리 도내에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 많은데, 각 지역별로 보면 전주와 완주, 김제에는 모악산, 정읍에는 내장산(신선봉), 남원에는 지리산(천왕봉, 반야봉), 순창에는 강천산, 임실에는 성수산, 고창에는 선운산(국사봉), 진안에는 마이산과 운장산, 장수에는 장안산과 팔공산, 완주에는 대둔산, 부안에는 내변산(쌍선봉), 무주에는 덕유산과 적상산 등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산이 있고, 또 그 산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릇 산악인들 중에는 전국의 3대 계곡(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다녀오지 아니하면 등산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디 그곳만이 산이고, 꼭 그곳을 다녀와야만 산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고장에 있는 산도 모두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금년에는 적당한 수량과 적당한 일교차로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

 

고향사랑이 뭐 별것이겠습니까? 내 고장 산에 있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고향사랑이 아니겠는가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때로는 연인과 함께 우리 고장, 우리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 고향사랑 마음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함께 길러보심이 어떨지?!

 

/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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