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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호남가(湖南歌) - 이규일

이규일(미술평론가)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전주에서 발간한 완판 <춘향전> 에는‘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 勝花時)’라고 표현했다. 5월10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제3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고향임(49)씨가 판소리 명창부문 장원으로 뽑혀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 새로운 명창으로 탄생했다. 고씨는 2004년과 2005년 두 번이나 이 대회에 출전, 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고 올해 세 번째 도전, 동헌 뜰에서 어사상봉 대목을 열창한 <춘향가> 를 불러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1784년(정조8년)부터 생긴 국악잔치다. 사습(私習)은 오늘날 경연대회를 말하는 것. 전주대사습은 일제 강점기에 없어졌다가 전북도민의 열성으로 1975년에 부활했다. 이 행사가 열릴 때 마다 지방문화를 발전시킬 이렇게 좋은 아이템이 어디 있을까 하고 자부해 왔지만 올해는 지자체 선거가 있어 더더욱 전통과 지방문화 진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에도 전주대사습을 놓고 전라감영과 전주부가 경쟁을 벌였다고 들었다.

 

모쪼록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연례행사에 그치지 않고 전통의 바탕위에서 시대의 흐름을 담아 낼 수 있는 참신성이 보태지는 늘 새로운 국악잔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도 1970년대 초 국악을 좋아하는 화가 한분과 함께 인간문화재였던 일산(一山)김명환(金命煥)공에게 북을 배우러 다닌 일이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일산이 매어준 북을 들고 그분 집에 가서 북치는 법을 배웠다. 일산은 ‘호남가’를 부르면서 장단을 가르쳤다.

 

나는 리듬에 서툴러서였는지 그를 따라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 제주어선 빌어 타고 해남으로 건너 갈 제…”하고 노래만 불러 제 꼈다. 일산은 치라는 북은 안치고 노래만 한다고 핀잔을 줬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북보다 소리가 좋았다. 어쩌면 소리에 좀 자신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게 임방울 명창이 부른 호남가 판도 있었고, 거문고의 명인 신쾌동옹이 부른 호남가 카세트도 있어 짬이 나면 곧잘 흥얼거렸다. 나는 노래를 잘 못한다. 이 단점을 커버하는 방법으로 남들이 잘 모르는 판소리를 18번으로 삼은 것이다. 모임이건, 회식이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선 으레 목청껏 호남가를 뽑았다. 게다가 호남 푸대접에 대한 반발 심리까지 발동, 오기로 더 불렀다. 그러자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 말을 외우면서 무슨 뜻인가도 알아냈다.

 

호남가는 전라남북도 54개 고을의 이름을 넣어서 만든 노래다. 구전되는 것을 동리(桐里)신재효(申在孝)선생이 정리했다. 읊조릴수록 기가 막힌 가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남가에는 여러 지역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 화초 무장(茂長)하니/ 나무나무 임실(任實)하고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은 화순(和順)이요 인심은 함열(咸悅)인데/ 이초는 무주(茂朱)하고 서기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사농공상 낙안(樂安)이요 부모형제 동복(同福)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나는 소년시절 함라면 함열리에서 살았다. 함라에는 국창 송만갑도, 명창 김소희도 자주 왔었다고 한다. 양노당 어른들은 임방울 소리를 들으러 전주든 군산이든 가리지 않고 다녔다니 국악애호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송만갑은 우리 동네 조 참봉하고 양산을 받고 밭에 나가 콩밭 매는 아낙네들 앞에서도 판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고향정서 덕분에 필자도 국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는데 해마다 열리는 전주 대사습놀이 행사로 판소리에는 ‘반풍수’가 되었다. 오늘도 서른네 살이나 된 아들이 세살 때 일산어른이 매준 북에 올라가 오줌을 싼 ‘기념 북’을 치면서 호남가를 불러본다.

 

/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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