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일(미술평론가)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뜨겁다.
가뜩이나 일찍 찾아온 더위로 후덥지근한데 장마까지 시작, 불쾌지수가 높다. 이런 때 촌철살인의 계(戒)가 있는 소나기 같이 삽상(颯爽)한 김 삿갓의 시한수를 음미하는 것은 어떨까?
김 삿갓이 방랑 중에 산골에서 해가 저물었다. 하루 밤을 쉬어가기 위해 서당을 찾아 훈장에게 재워줄 것을 청했다. 훈장은 “서당에서 유하려면 글을 알아야 허가 할 수 있다”면서 한시를 짓는 시험문제를 냈다.
첫 번째 내놓은 운(韻)이 찾을 멱(覓)자였다.
김 삿갓은 붓을 들고 “하고 많은 운자 중에 어찌 하필 찾을 멱자를 부르십니까(許多韻字 何呼覓)”하고 첫 구를 썼다.
훈장은 내쳐 ‘멱’하고 또 한번 멱자 운을 던졌다. 김 삿갓은 “멱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또 멱자를 부르십니까(覓字猶難 況呼覓)”하고 댓구를 놓았다. 훈장은 세 번째도 ‘멱’하고 운을 불렀다. 김 삿갓은 “하루 밤 자고 못자는 것이 멱자 한자에 달렸구나(一夜宿寢 懸于覓)”하고 원성을 담아 써 내려갔다. 훈장은 마지막에도 ‘멱’하고 신경질적으로 운을 띄웠다. 김 삿갓은 기다렸다는 듯이 “산촌 훈장이 단지 멱자 한자 밖에 모르는가 보다(山村訓長 但知覓)”고 부아를 돋우웠다. 김 삿갓이 산촌 훈장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인 것이다.
이 얼마나 통쾌한 즉흥시인가.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함이 느껴지는 해학(諧謔)이 아닐 수 없다. 김 삿갓이 금강산 시회에 참가해서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 지은 위트 있는 시가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더 이상 갈수 없어)서서 보니(一步 二步 三步立)/산은 푸르고 돌은 희고 사이사이에 꽃이 붉었더라(山靑石白 間間花)/만약 화공을 불러 이 아름다운 경치를 그릴 양 이면(若使畵工 模此景)/그 숲 사이를 오르내리는 새소리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其於林下 鳥聲何)”하고 걱정했다.
필자는 30년전쯤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 전시회를 보면서, 옳지! 하고 쾌재를 부른 적이 있다. 새소리 그리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 이란 작품 인데, 한 선비가 나무가 울창한 숲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묵화였다. 전주 합죽선에 수묵담채로 그린 똑 소리 나는 명품이었다. 금새 그림 속 숲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필자의 지나친 과장일까…. 심전은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으로 양천겾陸?군수를 지냈다. 해서곀善춠초서겳뭡??각체 글씨에 뛰어났고, 산수겴菅컖화조 그림에도 능했던 구한말의 대표적 명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학교인 경성 서화미술회 교수로 김은호겴鵑錯?노수현겴結肉理?후진을 양성하고,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서화가들만의 모임인 서화협회를 조직(1918년), 초대 회장으로 민족미술을 일으켰다. 성재수간(聲在樹間)>
산촌 훈장의 고집을 꺾은 김 삿갓의 나무람이나 새소리를 그리는 묘법을 가르쳐준 심전의 그림에서 필자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찾아본다.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라야 한다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응원가는 있는데, 동으로 서로 극과 극을 달리는 생각을 한데 모을 화합의 시는 정녕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대통령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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