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웅(변호사)
마야는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후 1000년경까지 번영을 누리다가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몰락원인에 대해서 많은 가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져 있다.
나는 유카탄 반도의 휴양지 칸쿤에서 버스를 타고 마야문명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치첸이싸(Chichen Itza)를 방문하였다.
숫자 ‘0’의 개념을 이해하는 어느 문명보다 편리한 숫자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태양의 공전주기, 춘분과 추분의 계산, 일식과 월식주기의 계산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유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유적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러 유적 벽면에 새겨져 있는 인신공양의 관습이다.
마야인들은 제정일치의 신정체제를 갖추고 있었는데 당시 중남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인신공양의 방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행하곤 했다.
어떤 역사학자는 마야의 이러한 제사습속에서 문명의 몰락원인을 찾고자 했다.
다른 중남미 문명에서도 인신공양이 널리 유행하였지만 제사의 제물이 주로 타 부족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마야에서는 자신의 종족 중에서 뛰어난 남자를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타 문명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마야의 지배계급인 신관계급이 제물로써 마야족의 우수한 남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지배력의 공고화를 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누군가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능력을 보이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재주를 보이면 신이 원한다는 미명으로 제물로 바침으로써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각 지방에서 대표로 선발된 뛰어난 남자들을 구기장으로 불러 구기시합을 통하여 패자는 죽이고 최후의 승자는 제물로 바침으로써 지방의 유력한 잠재적 군사들을 제거하는 방식이 여러 세기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지배체제 유지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어 실제로 기존질서에 대항하는 반란이 마야 전 역사에 걸쳐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보라! 그러한 사회에서 누가 현명한 제안을 해서 보다 발전된 사회건설을 이끌고 건강한 신체단련으로써 향상된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한 시도는 지배계급의 위협으로 느껴져 제물이 될 수 밖에 없기에 누구도 어리석고 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이러한 트렌드는 점차로 위대한 마야제국을 당연히 몰락으로 이끌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치첸이싸에서 칸쿤으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저녁노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 역사를 통틀어 어떠한 국가나 사회든지 기득권 지배계층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또 그 기득권층이 체제를 유지하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고 그 인간의 속성 때문에 역사는 正-反-合의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지만 그 욕망이 도가 지나쳐 合의 과정에 가지 못하고 국가나 사회전체가 파국으로까지 치달을 수가 있다는 것을 치첸이싸의 마야유적이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과연 오늘날에는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기득권 유지수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박차웅(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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