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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원시와 야만의 땅 - 박차웅

박차웅(변호사)

작열하는 8월에 바이칼호 여행계획을 잡았다. 서바이칼은 러시아 직할주인 이루쿠츠크이고 동바이칼은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인데 일반적으로 이루쿠츠크쪽은 관광개발이 잘 되어있어 보통 이루쿠츠크에서 차편으로 리스트반카로 이동하여 바이칼호를 체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는 일부러 관광객이 없는 동바이칼쪽을 택하여 블라디보스톡에서 비행기편으로 브리야트공화국 수도인 울란우데로 가서 동바이칼 연안을 둘러보는 계획을 세웠다.

 

브리야트는 러시아 자치공화국 중 유일하게 라마계 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인구의 25% 정도가 몽골계인 브리야트족으로 이루어져 있어 울란우데 시내를 걷다보니 러시아계와 몽골계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고 연인들도 많이 보여 매우 이채로왔다.

 

브리야트 최고의 호텔이어서 국빈이 머문다는 게세르호텔은 실망스럽게도 3류 호텔 수준 밖에 되지 않았고 시내를 돌아보니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다음날 유량계만 작동하고 나머지 모든 계기판은 작동이 멈춰있는 낡은 차(기사는 일제차이니 고장을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연방 안심시켰다)를 타고 끝없는 침엽수림대를 지나 바이칼로 이동했다.

 

바이칼은 ‘풍요의 호수’라는 뜻으로 2500만년동안 지질변화를 전혀 겪지 않아 ‘진화의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리어 호수의 생물 중 70%가 바이칼에만 존재하는 고유종이며, 면적이 남한면적의 약 3분의 1인데 최고 수심이 1637m에 이를 정도로 깊어 전세계 담수호 수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란다.

 

바이칼호변의 휴양지에 도착해서 호수를 바라보니 깨끗한 북구의 바닷가에 온 느낌이 들었고 빽빽히 들어찬 숲을 배경으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푸른 물은 너무도 투명해서 투명도가 40미터란다.

 

수영복을 입고 호수에 들어갔는데 그 물의 차가움이란! 30초를 못 견디고 튀어나왔다.

 

바이칼의 아름다운 경치와 대조되어 인상적인 것은 고압적 관료주의와 아무런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견디는 서민들의 삶이었다.

 

울란우데에서 바이칼까지 왕복하는 동안 경찰의 검문을 3번 받았고 아무런 이유없이(단지 귀찮은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한번당 우리돈 약 2000원씩을 지급하였다(뜯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조그마한 공항에서 수 시간을 기다리다 비행기 출발이 다음날로 연기되었다는 말 한마디 외에 아무런 해명없이 돌아서는 공무원에게 100여명의 승객들로부터 단 한마디의 불평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더욱 경이적이었다.

 

마치 그러한 시스템에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로써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바이칼과 시베리아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돌아오는 비행기속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19세기 러시아 부조리를 통박하는 글을 써 저항하다가 횡사한 푸쉬킨과 쌍벽을 이루는 국민시인 레르몬토프가 자신의 조국 러시아를 가리켜 ‘원시와 야만의 땅, 나의 조국 러시아여’라고 읊은 말이 절실히 가슴에 닿았다.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한 시베리아 타이가 삼림과 바이칼호, 일상인들의 삶의 간난신고, 관료들의 구조적 부패 이 모든 것을 단 한마디로 압축하여 놓은 절구(絶句)이리라.

 

/박차웅(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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