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2006년 11월말! 병술년 이 해도 동쪽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채 노을을 비켜가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가슴 찡한 글이 있기에, 전해 드리며 한 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1. 당신의 허리 :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겨워 그 자존심만큼이나 꼿꼿하던 당신의 허리는 휘청거리는가? 헛기침이라도 크게 하며 가슴을 떡 벌리고 대문을 나서던 그 패기, 그 자신감은 다 어디 가고 백발 성성한 구부정한 모습으로 지친 걸음을 내딛는가, 당신은. 가족의 기대가 너무 버겁다면 우리 모두 기대만큼의 무게를 내려놓겠습니다. 책임의 분량이 과하다면 조금 조금씩 나눠지겠습니다, 우리가. 부디 양 어깨에 짓눌린 벅찬 고뇌를 내려놓고, 허리 곧추세우고 가슴 쫙 편 채 앞만 보고 걸으십시오. 자신감 가지고 당당하게 걸으십시오. 우리들의 기둥인 당신이시여! (박현자 시인의 “감 꽃 목걸이”에서)
#2. 아내 :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여보, 점심 먹고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 점심 약속 있어.”라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들어왔다.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병원을 나갔다.
아내가 명절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나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3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아내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는 잠들기전 말했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은 나보고 사랑한다고 말 안 했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글쓰신 분 모름, 원문을 줄임)
인생의 여정에서 세월의 때가 묻으면 묻을수록, 모질면 모질수록, 거칠면 거칠수록, 더 높아지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것 그리고 고목일수록, 골동품일수록 더 귀하고 더 소중한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하나, 부부의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밤만은 꼭, 세월에 씻겨버린 아내의 손을 잡으시고, 세월에 패어버린 지아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시고…. 사랑한다고….
/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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