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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연말 고향모임 풍경 - 윤승용

윤승용(국방홍보원장)

며칠 전 가까운 고교 동문 선후배들과의 점심자리에서였다. 이날 동석하기로 했던 정부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가 식사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부처의 긴급한 일로 참석이 어렵겠다고 연락해왔다. 이 전갈을 들은 한 선배분이 버럭 화를 내며 “그 친구 요즘 사람이 변했어. 통 동문 모임에 얼굴을 안 비쳐. 아예 고향 쪽에 등을 돌릴 셈인 가봐”라고 쏘아 부쳤다.

 

이어 참석자 중 서너명이 그 국장에 대한 서운한 심사를 잇달아 털어놨다. “내가 최근에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회신이 없더라고...” “자기 동기들 모임에도 거의 발을 끊었다지?”

 

순식간에 식사자리는 그 국장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모해버렸다. 가까스로 한 원로 선배가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수상해서 가급적 동향모임 참석을 자제하는 모양이니 일단 이해해줍시다”라고 말해 성토극은 막을 내렸다.

 

며칠만 지나면 12월이다. 누구나 각종 동창회, 향우회 등 한 해를 매듭 짓는 이런저런 모임이 줄을 이을 것이다. 아마 그런 모임에서마다 어쩌면 앞서 묘사한 성토극이 재연될 지도 모른다. 당연히 비난 대상은 향토 출신 정치인, 관료, 기업인 등일 것이다. 이 같은 성토극은 과거에도 물론 있었겠지만 DJ정부에 접어들면서 줄을 이었다. 초기에는 그간 비호남 출신으로 행세하다 정권이 바뀐 후 “나도 실은 고향이 그쪽 이랑께”라며 커밍아웃한 인사들에 대한 비난이 주류를 이루었다. 어느 모임에서건 “아니 그 친구가 호남사람이었어?” “초등학교때 상경해놓고 이제 와서 전북출신이라며 결국 이번 인사때 지역안배 케이스로 우리 TO마저 잡아먹었다니까”라는 말들이 오가곤했다. 기왕지사 고등학교까지 촌에서 나오는 바람에 호남인출신임을 이마에 써 붙이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눈에는 ‘나도 전라도인’이라는 커밍아웃 시리즈는 실소를 넘어 분노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이 같은 호남출신 커밍아웃은 참여정부들어서도 계속되더니 요즘 들어서는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해져가자 관료나 대기업 임원들의 경우 다시 과거처럼 고향 숨기기 등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양상의 일단이 동문 모임이나 향우회 등에 발길을 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고향모임에 발길을 뜸해하는 인사들에게 너무 가혹한 눈길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처신해야만 하는 본인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그렇게라도 살아남는 게 오히려 훗날 고향을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또한 무슨 이벤트만 있으면 동향 오너 기업인이나 대기업의 임원 들에게 협찬이란 이름아래 손을 내미는 풍토도 이젠 지양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민원으로 이들을 귀찮게 하는 일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일단 그 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진정 고향을 사랑하는 길이다.

 

/윤승용(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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