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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메밀꽃과 라디오스타 - 남형두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저작권법)

몇 해 전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생가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건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봉평을 찾은 적이 있다. 마을 초입부터 봉평 장을 재현한 듯(?) 온통 막걸리에 감자전 판이었다. 허기사 소설에도 충주집이라는 주막이 나오긴 하지만. 주점 안에 들어가 생가와 기념관을 물어보면 대개가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 듯 쳐다 본다. 물어물어 찾아간 기념관은 대로변에서 가장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모두 충주집에서 다리가 풀렸는지 이곳까지 온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봉평을 찾은 것은 아이들에게 ‘그’ 물방앗간과 희다 못해 필시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그’ 메밀밭, 그리고 왼손잡이 동이 뒤에서 터덜터덜 대화 장으로 걸어가는 허생원이 보았던 ‘그’ 밤 벌판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충주집만 보고 왔으니 먼 길을 부러 간 것이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같은 해 ‘왕의 남자’로 대박을 터트린 이준익 감독이 만들었다. 이감독은 라디오스타 관람객이 백만을 넘자 ‘왕의 남자’의 천만 관객 보다 소중하다는 말로 이 영화를 자평하였다. 영월이라는 작은 지역에 전성기가 지난 퇴물 가수가 지역라디오방송 DJ로 나오고, 영월의 유일한 록 밴드 이스트리버(동강)가 이 지역의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함께 인터넷방송을 통해 전국을 석권해 버린다. 이 영화 제목은 버글스라는 영국의 팝그룹이 부른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나온 듯싶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흘러갔어야 할 라디오스타가 비디오시대에 다시 살아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니, 영화 못지않게 제목이 주는 감동이 대단하다.

 

교통의 발달은 세계를 가깝게 만들었다. 그런데 인터넷은 세계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동시대로 만들어 버렸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뜻하는데, 인터넷의 동시성은 장소의 간격을 메운 것이다. 이로써 더 이상 지역문화와 지역지식산업은 설 땅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성(locality)에 터 잡지 않은 보편성(universality)은 큰 매력을 갖기 어렵다. 인터넷 시대에 지역성은 포기할 수 없는 콘텐츠다. 오히려 인터넷에 의해 이전에는 쉽게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성, 지역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단을 얻은 셈이니 지역성에 터 잡은 문화는 더 많은 유포와 교류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감자전은 봉평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이스트리버는 영월에만 있다. 첫 원고에 웬 강원도 타령이냐 묻는다면 문화자산이 풍부한 우리 고향이 혹 감자전을 팔고 있거나 그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우에서다.

 

△남형두 교수는 부안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워싱톤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법시험합격 뒤 저작권심의조정위원.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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