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안양대교수)
우리는 지난 1960년대 이후 20세기말 까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성장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혹자(或者)는 수요와 공급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원리와는 달리 일종의 특수이론인 발전국가론(發展國家論)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에 의한 민간 기업가정신이 경제발전의 요체라고 주장하는 경제발전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발전국가론은 국가가 민간기업가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 경제발전은 국가 기업가론의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국가가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직접 세계은행 등에서 조달하고, 이를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과거 경제기획원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그 기능을 수행해 왔다. 둘째, 국가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각종 인프라를 직접 계획하고 개발하였다. 고속도로, 댐, 항만 등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산업단지까지도 국가가 직접 개입하였다. 셋째, 국가는 자본가와 근로자에게 일정한 규율(discipline)을 부과하여 기업경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우리 젊은이들의 군복무 경험은 이러한 규율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넷째, 새로운 산업기술 역시 시장논리보다는 국가가 우선순위를 설정하였다. 전자,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위한 각종 관련 법 제정이 그 대표적 사례이며, 신산업기술 개발에 필요한 연구개발(R&D)도 민간이 아닌 국가가 직접 주도하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한 많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산업정책, 즉 국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국가의 주요 기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개발독재체제로부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는 지역간의 분쟁과 갈등 때문에 지역개발사업의 추진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정부(GO)와 비정부기구(NGO)의 역할과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 새만금 사업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등의 국가프로젝트에 대한 논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쟁조정을 위한 설득의 예술, 그리고 정답(正答)을 끌어낼 수 있는 토론문화의 정착과 인내심은 아직도 우리에게 요원한 숙제인가?
세계화와 무한경쟁시대에 시장의 자율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의 가치판단기준이 다양화되면서 삶의 질에 대한 기준도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 및 지역개발의 기반이 되었던 경험적 지식에 대한 흥미가 퇴색되어 가는 일종의 ‘발전피로증후군’이 또한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신드롬에서 탈피하고, 21세기 메가트랜드(megatrend)에 적응해 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는 요구받고 있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이해당사자간의 합의형성을 위해 민주주의적 절차와 규범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화와 지역발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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