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주(우석대 심리학 교수)
부끄럽게도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지 이미 오래이다. 매년 국회에서 행해지는 국정감사, 올해도 예외 없이 삿대질에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들이 되풀이 되었다. 촛불시위에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는 어느 아기엄마에게 고함을 치는 의원도 보이고, 사진 찍지 말라고 두 눈을 부릅뜬 어느 장관의 흥분되고 상기된 모습도 보았다. 마치 누가 먼저 큰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정감사에서 이른 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자신의 지역구 국민들에게 보이는 방법은 많을 터인데 매년 연출되는 언어적 폭력과 고함은 토론에 관한 한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해 생길 수 있는 장면이려니 하며 십분 너그러운 마음을 발휘해 볼 수도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치졸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큰 소리로,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이긴다는 면에서 보면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예의 없고 무식하기 그지없음이지 결코 "장땡"이 아니다. 일그러진 표정을 들이대며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내지르는 큰소리는 인간의 심리 저변에 공포감, 무서움을 조성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면서 서로에게 내지르던 큰소리, 고함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역시 당시 어린 마음에 공포감이 생생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압함은 물론 상대의 의견이 어떠한지 전혀 듣지 않고 무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는 큰 소리는 상대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기 때문에 폭력이나 진배없다. 흥분을 잘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 그들의 토론문화를 접해 본 경험에 의하면 두 명의 토론자는 누가 봐도 싸우기 일보 직전인 듯 거의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속사포로 쏟아낸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설마 목소리가 크면 이기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방식의 토론을 하면서도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듣는 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반대든 찬성이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것인가.
요지는 공감과 경청의 방법,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 신뢰의 차이가 아닐까. 목소리가 크다고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상대의 생각보다 옳다고, 더 나은 생각이라고 주장하려면 목소리만 키우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는 적절하고 합당한 방법으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합리와 이성보다는 힘을 앞세워 내 몫을 찾으려는 사회 분위기는 이제 그만 거두어야 할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침묵하는 동안 현명하게 경청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박영주(우석대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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