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아름다운 마무리'를 꾀해야 할 세밑이다. 이젠 금년도 두 주 밖에 남지 않았다. 미룬 일이며 끝내지 못한 숙제들로 이 무렵이면 너 나 없이 모두가 바빠진다. "게으른 자 석양夕陽에 바쁘다."는 속담이 절감된다. 어제와 그리고 내일과 다름없는 같은 측정치의 시간들이나 12월은 더욱 짧게 느껴짐은 우리들의 공통된 사항이 아닌가. 그래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는 공간에 신을 믿건 믿지 않건 우리는 들뜨게 하는 성탄절이 있고, 새해에 대한 저마다의 기대로 조금은 설렐 때이다. 겨울답게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 동장군冬將軍을 만나기도 했고 이따금씩 눈이 내려 설화雪花가 무채색 공간을 아름다운 눈부심으로 다가와 세한 시절 푸근함으로 다가온다.
한파가 강토 전역을 잠시 덮친 마지막 달 주말에 이어 지난주엔 광주, 제주, 김해, 진주, 전주, 부안 등 여섯 지역을 다녀왔다. 지역에 소재한 국립박물관 등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 손으로 처음 건립한 국립광주박물관이 금년으로 개관 30년을 맞이했고, 국립진주박물관은 가야문화 임진왜란 중심을 거쳐 이와 더불어 경남의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주제와 전시 기법으로 재 개관했다. 부안에선 전라북도박물관협의회 주관 전북지역 박물관과 미술관의 상호 교류 활성화와를 위한 워크숍이 있었다. 제주에선 이틀에 걸친 제2회 한-중앙아시아 협력포럼 네 회의 중 세 번째가 교육, 문화 분야에서선 국가 대표 박물관간 문화교류 협력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금년도 국립박물관 특별전시 중 돋보이는 것으론 서울에 이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는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와 여름에 연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과 국립경주박물관 가을에 열린 기획전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이다. 전자는 세밑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후자는 16일부터 국립제주박물관에 이전 전시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갈대밭 속의 나라 다호리茶戶里(2008.11.29-2009.2.1)' 그리고 '고려 왕실의 도자기(2008.12.2-2009.2.15)'와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이 수집한 '일본 근대 서양화(2008.11.18-2009.10.11)' 또한 놓치기 아까운 전시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선 18년 전에 개최된 '삼국시대 조각(1990.10.16-1991.1.8)'을 이은 전시가 16일부터 열린다.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의 울림 통일신라 조각(2008.12.16-2009.31)'은 우리 고대 문화유산의 정수精髓로 지칭되는 통일신라 조각을 망라한 기획전이다. 민족통일후 넘치는 기상 및 자신감과 더불어 개방된 국제적인 감각을 세련된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실성과 초월성, 불심과의 이상적 조화로 독창성을 이룩해 고전미古典美의 정형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동시대 불상도 함께 비교해 국제적인 양식의 보편성과 우리 조각의 특성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유례가 드문 대규모 전시이다. 세모의 허전함이 아닌 민족의 예술 혼이 깃든 영원한 생명의 울림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뿌듯함을 솟게 한다. 올해도 전북예술회관에선 19일부터 어김없이 김두해 ? 이흥재 ? 선기현의 삼인전三人展이 열린다. 우정友情을 과시하듯 21회 째를 맞이하니 세한歲寒이나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눈꽃처럼 빛나는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침이 있다. 금년도 2월은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마火魔를 입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에 있어 가장 큰 허물은 인생을 허비한 것이며, 용서 받기 어려운 중죄가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며, 신神도 구원할 수 없는 것이 절망이라 한다. '바보처럼 살았군요' 노래 가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멈춤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다짐이자 일보후퇴一步後退에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한 숨고르기 아닌가. 예술은 우리에게 생명과 강한 힘을 준다.
/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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