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바야흐로 걷기의 시대다. 어떤 이는 살을 빼기 위해서, 어떤 이는 건강관리를 위해서 그리고 또 어떤 이는 걷기를 통한 자기수양을 위해서나 걷는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걷는다. 요즘은 영화 속 장소들을 걷거나 소설 속의 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걷기의 열풍은 그 장소가 일상 속 도시일 수도 있고 풍경이 아름다운 들판이나 산길이기도 하다.
여행에서도 걷기의 열풍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걷기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기 위한 책들이 서점가에 즐비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이나 민간의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환경부, 산림청 등 중앙부처는 경쟁적으로 "길"을 찾는데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산림청은 지리산 숲길을 찾는데 100억 이상의 예산을 지원하였고, 환경부는 전국토의 생태탐방로 구축 사업을 통하여 이른바 걷기의 열풍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길"을 찾는 것은 민간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올레라는 길을 찾아 홍보하고 있는 서명숙씨는 "걸어서 다녀보지 않고서는 그곳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걷는 걷기여행의 철학을 가지고 제주도의 걷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 천리길" 프로젝트를 국정과제로 제시하였다. 도보관광(walking tourism)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특성있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길(path)을 따라 관광자원 및 관광시설을 이용한 탐방로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맞춰 강원도에서는 길 브랜딩 전략을 연구하고 있고, 다른 자치단체에서 에코 트레일 조성 등 길을 중심으로 한 사업개발이 쏟아지고 있다.
이야기 속을 걷는다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최치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유도를, 개양할미 이야기를 들으면 변산반도의 길을 걷는다. 고인돌 사이를 걸으며 구석기 시대의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길을 통해 심청이, 흥부, 춘향이, 변강쇠, 홍길동도 만난다. 너무 신나지 않은가?
걱정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은 완전히 걷는 자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길을 찾아내고 만들 경우 길을 통해 사람들이 얻고자 했던 것이 오히려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떤 이는 그 길에서 옛 애인을 만나고 어떤 이는 먼저 떠나간 친구를 생각할 수도 있다. 길에 이야기로 색깔을 입히되 상상력을 강요하지 않게... 참 어려운 일이다.
전라북도에도 바다, 산, 하천 등 자연자원을 중심으로 많은 길들이 연결되어 있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2009년에는 이 많은 길들이 이야기 옷을 입을 것이다. 이도령이 장가가는 길을 따라서, 판소리의 자취를 따라서 그리고 최치원과 새만금의 이야기를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걷기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정명희(전북발전硏 연구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