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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국가권력과 '미네르바' - 김성환

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한국은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지만, 정보사회의 문화와 사회변동에 대한 성찰은 크게 부족하다. 사람들은 단지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정보경제가 발달하면 정보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과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가 근대사회와 구분되는 새로운 사회, 혹은 문명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인터넷은 근대적인 '통제'와 '감시' 그리고 '지배'를 해체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투명사회'로 유명한 지엔니 바티모(Gianni Vattimo)는 십여 년 전에 "근대성의 해체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이 커뮤니케이션 사회의 도래에 있다"고 지적했다.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어느 특정인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에 참여하는 집단들이 '자동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조정하는" 네트워크의 특성에서 문명의 새로운 물결이 출현한다고 보았다.

 

이런 문명사적 전망에서 볼 때, '촛불'에서 '미네르바'에 이르는 최근의 인터넷 관련 사태를 비교적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국민국가권력의 제한이나 결정권의 분산,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비효율의 대명사가 된 의회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같은 정치적 변동이 나타날 것을 예견해왔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촛불'은 이런 정치적 변화가 현실화되는 조짐으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정보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목이 최근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한편 특정 분야의 정보와 지식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던 근대적 지식이 몰락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포괄적으로 공유하는 개방적인 지식이 번성하는 것도 정보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손꼽혀왔다. 인터넷논객 '미네르바'는 이런 정보사회가 낳은 새로운 지식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보사회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방적 매스미디어가 쇠퇴하는 대신 커뮤니케이션의 상호적이고 역동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해지는데, 인터넷 토론장 '아고라'의 성황이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인터넷 문화의 성장에 대한 국가의 대응방식 역시 연구자들의 흥미로운 관찰거리이다. 독점적인 국민국가권력, 그리고 근대적인 지식환경에 익숙한 분과 학문의 전문가나 언론이 인터넷의 정보와 지식환경 변화를 심각한 '위험'(내지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매체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기존 지식권력과 새로운 지식환경 사이에 종종 모순이 발생한다. 한 예로 인쇄술이 등장하던 시기에도 지금과 비슷한 혼돈이 있었다.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15세기 말부터 그리스·로마의 고전이 출판되고 새로운 종교개혁사상을 담은 출판물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전제왕조와 가톨릭교회가 패닉에 빠졌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제도와 방법을 동원해 새로운 매체를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매체통제는 끝내 산업혁명과 종교개혁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동력인쇄의 발달로 근대 계몽주의 이념이 신문·서적·잡지 등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이런 매체혁명의 결과로 프랑스혁명을 필두로 하는 문명사적인 사회변혁이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국가권력이 인터넷에 대응하는 방식이 중세유럽 말기와 흡사하다. 중세의 권력자들이 인쇄업자들을 압박했던 것처럼 국가권력이 인터넷포털을 압박하고, 교회의 사제들이 마녀사냥을 하듯 보수언론과 일부 지식인이 인터넷논객을 사냥한다. 이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한 때 인쇄술과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가 중세권력과 교회의 억압으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쇠락하고, 대신 자유로운 매체의 확산으로 문명사적인 변혁을 이룬 서유럽이 번영했던 역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나 판에 박힌 사고틀에서 벗어나 최근 우리 사회의 인터넷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문화에 대한 성찰의 깊이에 따라 촛불과 미네르바는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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