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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청춘'을 입자 - 이현수

이현수(시인)

 

요즘 젊은 세대들은 패션의 유행에 민감하다.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며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패션은 몇 차례의 계절을 항상 앞질러갔고, 그에 따라 많은 유행이 번졌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여전히 청춘의 상징으로 건재함을 자랑하는 옷이 있다. 바로 청바지다.

 

원래 청바지는 리바이 스트리우스가 광부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헤진다는 것에 착안해서 질기고 튼튼한 천막용 천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청바지는 실용성을 인정받아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고, 미국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이 입고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그 후 청바지는 시대에 따라 더 노련하게 변화해 왔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들의 심리를 적절히 공략했고, 이는 성공했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청바지는 이미 많은 세대를 아우를 정도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하며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표현해내는 거대한 힘 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독특하기도 한데 필자에게는 특히 '구제청바지'가 그러하다. '구제'라 함은 남의 손을 한 번 거쳤다는 뜻인데,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되며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유독 젊은 세대들은 '구제 청바지'에 열광한다. 외국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설령 세탁과 수선을 거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망설이지 않는다. 오히려 오랫동안 입어왔던 것 같은 편안함과 오랜 세월이 만들어준 자연스러운 무늬가 그 매력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필자는 이쯤 되면 매력이 아니라 마력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구제청바지'의 멋스러움을 필자도 이해한다. 옷을 물려 입고 물려주며 자라 거부감이 적기도 하지만 '구제청바지'에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헤질 때까지 입고 누린 갸륵한 시간이 멋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갸륵한 시간은 내 몸에 걸친다고 해서 결코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밖으로 드러난 멋스러움을 즐기는 것 뿐, 궁극적으로 그 이상의 가치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청바지가 좋다. 어딘지 미련할 정도로 질기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것이 청바지에도 사람의 뚝심같은 것이 있나 싶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젊은 세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단지 '구제청바지'가 아니라 그 질기고 튼튼한 청바지가 헤질 때까지 입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바지가 헤지고 낡을 때까지 세상에 부딪치며 삶을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청춘'일 것이며,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옷에 배여 자신만의 가장 멋스러운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왠지 패션은 있지만 청춘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필자 역시 '청춘'이라는 것을 한 번씩 서랍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청춘'이라는 옷을 꺼내 입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절대로 입을 수 없기에 더 헤지고 닳도록 입어야 하는 '청춘'을 말이다.

 

/이현수(시인)

 

▲ 이현수 시인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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