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웅(시인)
내가 태어난 도시는 전라선의 끄트머리에 조가비처럼 자리 잡은 여수라는 곳이다. 대학을 전북 쪽으로 진학하면서 여수를 떠난 지 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비릿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그곳에는 아직 친구 몇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떠도는 말로는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라고 했지만, 여수를 지키는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주머니가 가볍다. 대규모의 석유화학 공업단지가 있어 때때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은 벌어 쓰겠지만, 그것도 경기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공단에 연줄이 없거나 게으른 놈들은 부모님 눈치를 보며 독서실에서 취업준비를 하며 여태 컵라면을 끊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명절날에 모여서는 시내바닥을 쏘다니면서 꿈에 대해 버럭버럭 소리 지르던 놈들이 서른이 되니 전라선만큼이나 늙어버렸다.
무엇이 친구들에게서 꿈을 빼앗아 갔는지는 모른다. 아직 서른이니 꿈을 접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꿔보겠다거나 1조를 벌겠다는 등의 꿈같은 꿈을 떠벌리고 다니기에는 너무 늦었다. 소주 몇 잔 걸치고 종포 앞바다에 오줌을 갈기거나 오거리와 진남관 앞길까지 휘젓던, 정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1조가 껌 값처럼 느껴졌고, 세상을 바꾸는 것도 예비군 훈련만큼이나 쉽다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들이며 나는 이런 생각이 꿈이라기보다 객기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 객기를 부리고 방구석에 누워 있다 보면 항문 언저리부터 알 수 없는 힘이 불끈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멱살을 움켜쥘 것 같았던 객기도 친구들을 만나야 부릴 수 있는 것이라, 서로 통 연락이 없는 요즘은 꿈이며 취업 같은 말은 되도록 아낄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게 화가 난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것 같은 서른이 더위 먹은 개처럼 빌빌 거린다는 것이 열 받고, 내 친구들 중에 그 흔한 대기업에 취직한 놈이 한 녀석도 없는 것에 열불이 나고, 고교시절 영어 단어 외우기보다 무협지에 정신 팔렸던 과거에 화가 난다. 만화가며, 작가며 꿈꾸던 것들이 나이 서른이 되었다고, 이미 늦은 것 같다고, 먹고 사는 일에 쫓겨 아등바등 되는 꼴도 보기 싫다. 내가 더욱 천불이 나는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정말 아름다운 노동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먹고 사는 일로 나를 키웠고 나는 그 일 때문에 나름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있다. 이처럼 한 생을 구하는 노동을 나와 내 친구들은 아직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갑갑할 노릇이다.
조만간 여수에 내려가 친구들 낯을 볼 생각이다. 독서실에서 컵라면을 끊지 못하는 녀석과 신학대학 다닌다고 하다가 포기한 녀석과 군대에서 말뚝 박은 녀석을 만나 회라도 한 접시 먹을 작정이다. 소주 몇 잔 마시면서 간만에 세상에 대한 욕을 좀 하고 싶다. 내가 저지른 잘못 말고, 정부에 대한 험담이랄지 고교시절 공부 잘하던 녀석에 대한 흉이랄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리저리 시비도 걸면서 최대한 방정맞게 놀 것이다. 또 시간이 난다면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중에 누가 더 예쁘냐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실없이 낄낄거리겠다. 최대한 분노할 것이며, 최대한 웃을 것이다. 간만에 객기를 부리며 여수가 세상의 중심인 듯, 서른의 중심인 듯, 밤새 친구들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백상웅(시인)
▲ 백상웅 시인은 198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지만, 2008년 창비 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시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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