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웅(시인)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학교 신문에 서평을 보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서평 내용 중에 뺐으면 하는 단락이 있다는 것이다. 앞뒤 문맥과 맞지 않으니, 삭제해도 괜찮지 않느냐며 그 분이 나를 달래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학생 자치권이며 표현의 자유를 떠올렸으며 민주주의와 독재를 비교분석하기도 하였다. 그 분께서 삭제하였으면 하는 부분이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이기는 하였으나, 이렇게까지 전화를 해서 뺐으면 좋겠다고 할지는 몰랐기에 전화를 끊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생각해보면 별 문제가 없는 이야기였다. 「체 게바라 평전」에 대해 서평을 썼고, 나는 체 게바라의 생애에 대해 적으면서 엘리트였던 그가 혁명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쉽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학내에서 겪었던 일과 책의 내용을 번갈아가며 서평을 써내려갔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학내에서 겪었던 일이었다. 그대로 옮겨 적자면 아래와 같다.
'예전에 정치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은 보수적인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함부로 옳다, 그르다 결론지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몇몇 발언들은 학생들의 정치적, 사회적 판단을 흐리게 할 정도로 위험해 보였습니다. '노동자들의 데모 때문에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다.' 혹은 '전교조, 민노총이 만들어지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들 때문에 민주화가 후퇴했다.'등의 주장은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님이 분명합니다. 전교조, 민노총은 합법적인 단체이며 그들 때문에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국가가 우선인 사회, 기업이 우선인 사회만큼 비민주적인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국가권력이 강한 사회에서는 시민의 자유가 없고 기업의 힘이 센 사회에서는 국가의 자유도, 시민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이 단락이 다른 단락과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을 뺀다면 서평을 실지 않겠다고 말했고, 신문에 서평은 실리지 않았다. 나는 분명 정치학 교수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단지 '우익인사'의 발언을 '체 게바라'의 입장에서 대꾸를 해본 것뿐이다. 교수님과 내가 다른 게 있다면, 하나의 발언은 수업시간에 이루어졌고 하나의 발언은 학교신문을 통해 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나의 서평을 실리지 못했다. '교수님을 욕하는 게 아니냐?'나 '그 부분을 조금 순화시켜봐라.'도 아닌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내 글은 잉크 냄새를 맡지 못했다. 나는 다른 문제로 더 화가 났다. 내 글이 엉망이니 신문에 실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그럼 나는 형편없는 글로 등단해서 학교 이름을 이런 저런 신문에 올린 게 되지 않는가.
이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나는 우익과 보수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좌우의 대립 속에 길은 막히기도 하고 트이기도 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난 수십 년간 민주당을 밀어온 우리 아버지도 절반은 우익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 한참 아래쪽에서 보면 우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보수며 진보가 아니라, 말하고 행동할 권리이다.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낸 사람에게 동조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그 의견을 존중해주는 마음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당신과 같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말에는 뾰족한 창을 들고 있는 '존중'이 숨어 있다.
나는 정치인들이 서로 헐뜯고 싸워도 좋다. 노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파업을 해도 좋다. 그들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참을 수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언젠가 그들이 나 때문에 불편한 것이 생길 때, 그들도 나처럼 불편을 참을 수 있는 마음이다. 지금 나는 불편하다. 학내에 학생 자치도 없고, 학생의 말이 실리는 신문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백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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