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웅(시인)
동시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봄꽃만 오질 나게 피고 선거는 재미가 없다. 한때, 대한민국 선거판을 신나게 흔들던 낙선운동도 없고, 유권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후보도 없다. 선거운동 규제는 거대 정당의 힘을 묶었지만, 과도한 법 규정으로 선거를 재미없게 만들어버렸다. 지방 신문사들은 후보자들 간의 중립을 지키느라 딱딱하고 규격화된 기사만 만들어내고 있다. 벚꽃 다 지기 전에는 선거판이 뜨거워졌으면 좋겠다. 혼탁하고 난잡했던 과거의 선거판을 바라는 게 아니다. 말과 말이 부딪쳐서 후끈 달아오르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한수 익산시장과 김승환 도교육감 예비후보만이 정책공약집을 만들어 서점에 내놨다는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한쪽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름 알리기에 급급하고, 인지도에 안주한 다른 후보들은 정책에 통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선거판이 재미없는 것은 꽃구경이나 하면서 참을 수는 있겠는데, 정책이 심심한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이 사실은 후보자들이 유권자를 '표'로만 보고 있다는 뜻이며, 정책대결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관심 있는 유권자라면 홈페이지를 찾아가 그들의 공약을 찾아볼 수 있다. 허나, 재미없는 선거판에 누가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면 공약을 확인하겠는가.
이런 분위기는 이른바 '묻지마 투표'로 이어진다. "몇 번째 칸 찍으세요.", "몇 번만 찍으세요."라며 선거운동을 하고 다니는 후보자들 덕분이다. 지나가다 이런 말을 들으면 듣는 내가 창피해서 낯이 다 붉어지는데, 후보자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손가락 몇 개를 펼친다. 이름과 기호만이 유령처럼 선거판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이쯤 되니까 어렸을 적 보았던 시계가 떠오른다. 숫자 0과 3만 크게 적혀 있던 벽시계는 선거역사상 가장 기막힌 홍보물이었을 것이다.
지지선언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각 후보자들의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교수와 학생, 여성과 남성 가리지 말고 지지선언을 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정치 의사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자유롭게 말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지지선언에 대해 말이 많은 모양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나 단체의 의사표현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어떤 후보든 상관이 없다. 누구를 지지하든 그것 또한 개인의 자유니까 말이다. 요즘 말로 그냥 '쿨'하게 지지선언을 하고, 지지선언을 '쿨'하게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선거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지방언론도 뜻있는 정책을 가진 후보자에게 지면을 한 칸이라도 더 써야 한다. 입장이 애매한 선거판에서 중립을 지키다보니, 뜻있고 참신한 정책이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의전화가 빗발쳐도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면 기자 분들은 더욱 힘을 내서 정책 선거문화 만들기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기자 분들이 앞장서면 후보자들도 "이봐! 우리도 좋은 정책으로 승부합시다!"하면서 뒤따를 것이다. 요즘 각 후보들끼리 포플리즘 운운하며 비난하는 게 보인다. 그러나 포플리즘은 선거판도가 정책 대결로 이어질 때, 진위여부가 가려지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대결이 없는데, 누가 정책을 평가하겠는가?
오질 나게 피던 봄꽃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푸른 잎사귀들이 꽃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연한 잎사귀들이 구름 구경에 지쳐갈 무렵이면 투표하는 날이 다가온다. 이 날, 유권자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가 누구를 찍든 나는 관심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찍어온 후보들은 당선권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투표를 하러 갈 때마다 '이번에는 되겠지.'이런 마음을 품는다. 그 때의 두근거림은 벚꽃을 보는 마음과 비슷하다.
6월 2일이다. 잊지 말고,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투표함에 넣었으면 좋겠다. 백지투표라도 좋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를 보면 백지투표로 정권을 심판하는 백색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투표소에 나가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보자.
/백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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