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웅(시인)
얼마 전 코스타리카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코스타리카에 군대가 없다는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세상에, 군대가 없는 나라가 있다니! 그것도 토론으로 군대를 없애버리다니! 나는 그동안 코스타리카를 월드컵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던 과거가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욱 신선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아스팔트길을 까는 데도 토론을 한단다. 그리고 흙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길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발에 흙이 묻고 더러워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많은 논란 끝에 새만금 방조제가 개통되었다. 새만금을 찬성했던 사람이고, 반대했던 사람이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둑을 쌓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새만금을 반대하오!'라고 큰소리로 커밍아웃을 해봤자, 둑을 허물어 예전의 갯벌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처럼 수많은 논쟁과 토론 끝에 군대를 없앤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새만금은 결국 새만금일 수밖에 없다.
새만금이 개통되었다. 깃발축제를 열었다. 관광객이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의 발을 묶을만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방파제,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의 만리장성 인공위성, 이건 더더욱 이야기가 아니다. 만리장성에는 중국 본토와 북방민족 간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갖고 있는 이야기는 뭔가? 이런 고민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새만금 개통식으로 열린 깃발축제는 새만금에 깃발이 꽂혀 있다는 사실 빼고는 새만금과 연결된 이야기가 없다.
수많은 논란 끝에 개통된 새만금 방조제가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뉴스보도에서는 연계 관광 상품 개발을 이야기한다. 이 말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새만금 주변에 볼거리가 정말 없는가? 새만금이 위치한 그 쪽이야 말로 전북이 자랑할 만한 자연이 숨어 있는 곳이다. 연계 관광 상품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새만금 방조제와 주변 관광지의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새만금이 대한민국을 제대로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새만금을 둘러싼 많은 논란들을 스토리텔링하여 이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갯벌 문제, 반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방조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스토리텔링하여 새만금이 가졌던 고질적인 문제점을 잘 보관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론으로 아스팔트길마저 만들지 않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사라진 흙길에 대해서 그렇게 기록하고 보전하였을 것이다. 이게 새만금을 알리는 가장 큰 홍보효과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 말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치부에 대해서도 당당하다. 새만금 방조제 개통은 정말 축하할 일이나, 그 장면만으로는 그림이 되지 않는다. 새만금이 가지고 있는 여러 논란들, 그리고 그 모습들이야 말로 새만금을 알리고 홍보하는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미래의 청사진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의 역사를 믿으려고 하지, 눈에 보지 않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 새만금의 미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과거는 보인다. 미래를 홍보하기 위해 과거를 아끼고 이용해야 한다. 새만금이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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