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화(창작극회 단원)
가을이 되니 여기저기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때에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라 결혼을 해야 하니까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걸까? 지금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결혼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지금 그대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는가? 결혼할 나이니까. 요즘의 결혼은 그러해 보인다.
또한 바쁜 직장생활로 만남의 기회조차 갖기 어려워진 요즘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여 '천상배필'을 찾아나서는 선남선녀들이 늘고 있다. 이는 결혼 상대자도 '맞춤설계'를 하겠다는 신세대적인 사고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에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면 그 부분을 채워주고 노력하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면 점점 발전하는 사랑,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요즘 청춘의 사랑은 어떠한가. 청춘의 관심사가 연애인거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청춘이랑 그 자체로 성에너지가 끓어오르는 시기이니까. 그런데 요즘 청춘의 사랑이 지극히 비속해진 것 같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녀관계를 보면 상대가 내게 어떤 현실적 이득을 주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 그렇게 물신화한, 자본주의화한 사랑의 세태, 사랑의 방식이 소위 말하는 쿨한 사랑인 것처럼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 TV나 다른 매체에서도 끊임없이 이런 사랑을 주입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그야말로 누구나 대학에 가는 판에, 최소한 중소기업의 입사원서라도 쓰기 위해서는 대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빨라도 24~27세가 되어야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집 사야지, 차 사야지, 결혼 혼수 준비해야지 이러고 있으면 30세를 훌쩍 넘는다. 자연스럽게 사랑의 기회도 억압받는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시대의 사랑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요구한다. 요즘 데이트족들의 데이트 패턴을 한번 생각해보자. 밥, 극장, 영화관, DVD방, PC방, 그리고 모텔등 돈 안드는 곳이 없다. 게다가 100일, 200일이면 하는 각종 이벤트도 준비해야 하고, 곧 돌아올 '빼빼로 데이'같은 기상천외한 기념일까지 챙겨줘야 한다. 이런 날은 으레 평소보다 더 분위기 있는 곳에서 데이트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식당 주인과 선물가게 주인들은 평소보다 더 높은 값을 부르며 젊은 커플들을 있는 대로 벗겨 먹는다. 결국은 '사랑이 사람을 착취하는 역설'까지 일어나게 된 셈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전에는 광장이 청춘을 만나게 했다면, 그리고 청년다운 열정을 뿜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청춘들은 독서실, PC방 같은 밀실에 갇혀 지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광장 자체도 제 기능을 못한 지 오래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 데에도 매우 주저하고, 또한 대부분이 인간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곳곳에 몰래 사랑을 나눌만한 공간들이 들어서고, 둘이서 조용히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음식점이나 데이트 장소들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가이드북까지 다 나오는 세상에 그토록 '사랑을 못하는 20대'가 판을 친다. 괴테가 생활에 행동이 요구되듯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듯이 우리에겐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미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길들여져 버린 우리는 실천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이수화(창작극회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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