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
어린 시절 정규교육과정에서 국사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성일과 황윤길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조선에서 파견했다는 두 사신. 황윤길은 전쟁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김성일은 이를 반박하였다. 선조는 김성일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결과 임진왜란에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배운 역사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엔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다. 선조에게 왜의 침입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끝난 후 서애 유성룡이 김성일을 불러 정말 왜가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느냐고 묻자 김성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라고 어찌 왜가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겠습니까? 다만, 불시에 이런 놀라운 소식이 알려지면 중앙과 변방이 아울러 심하게 놀랄 듯하여 그리하였습니다."
정비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 황윤길의 발언이 있은 후 조정은 각지에 성을 쌓고 장정들을 징집하는 등 급작스러운 대비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민심을 크게 동요되었다. 이에 김성일은 상소를 올려 오늘날 두려운 것은 섬나라 도적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이니 민심을 잃으면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내용으로 선조에게 내치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즉 김성일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아 전쟁준비를 하지 말자고 했던 게 아니라 민심이 동요돼 어지러워질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김성일은 전쟁이 일어나자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군을 조직하여 매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11월 24일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하여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잃은 소중한 생명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더 분노가 치미는 건 바로 이런 비극적 사건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용하려는 세력들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청와대 '대포폰 수사'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인터넷에는 '북한이 우리의 주적(主敵) 인 이유'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이라는 곳은 보도사진을 포토샵 효과로 조작하여 연평도 모습을 더 무섭고 더 공포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하나다.
"지금 전쟁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상황에 어디서 딴 소리야 정부 비판하지 말고 말이나 잘 들어. 지금 적이 눈앞에 있다. 적이 말이야."
사실은 때론 진실과 다를 수 있다.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또다른 진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실을 알아보려 하기보다는 이 사실을 더 왜곡하고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대해 젊은 우리들은 조금 냉철한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김성일의 눈 말이다.
/ 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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