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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⑤추사 김정희의 글씨(2)

소나무 가지 같은 필세(筆勢)

오늘은 추사의 작품 2점을 함께 보며 한문과 서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작품?'판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추사가 작고하기 사흘 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유배 7년, 함경도 북청 유배 2년을 거친 후, 추사는 서울 남쪽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에 머물며 시와 서예와 그림으로 만년을 보냈다. 이 때 추사는 유서 깊은 절인 봉은사를 왕래했는데, 때 마침 봉은사에서는 당시의 명승인 영기(永奇)스님(1820~1872)이 직접 베껴 쓴 화엄경을 인쇄할 목판을 완성하였고 그 목판을 보관할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판전'이다. 이 판전은 1856년 9월 말 혹은 10월 초에 에 완공되었고 완공에 맞춰 추사에게 현판을 청을 하였으니 추사는 작고하기 사흘 전인 1856년 10월 7일에 이 작품을 쓴 것이다. 이 작품은 추사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명작이다. 졸박미(拙樸美:공교함의 극을 넘어 다시 서툰 듯 천진스런 경계에 든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하여 마치 어린 아이 같은 천진무구함이 넘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역대 평자들의 칭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추사의 다른 작품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함께 봐야할 다른 작품이 바로 ?'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이다. '畵法有長江萬里'라는 말을 부연 설명하자면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만리나 되는 먼 거리를 흐르는 강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한 화폭에 담거나 아니면 담은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구도와 원근법, 채색법, 명암법 등을 터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書勢如孤松一枝'는 '글씨의 기세는 마치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바로 필획에 대한 요구이다. 서예 감상의 가장 기본이 되는 관점은 필획(한 글자를 이루는 각각의 획)과 결자(結字:각각의 필획이 모여 이루는 한 글자의 모양)와 장법(章法:각 글자가 모여 한 폭의 작품을 이룰 때의 구도 상의 어울림)인데 이들 3요소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필획이다. 필획이 제대로 살아있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서예가 될 수 없다. 필획이 살아있지 않은 결자와 장법은 무의미하다. 서예의 기세는 바로 필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추사는 이 기세를 '소나무 한 가지'처럼 하라고 했다. 이는 바로 필획을 소나무 가지처럼 힘차고 질박하게 그으라는 의미이다. 이 '소나무 한 가지'라는 비유는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람 사람 원앙(袁?)이 그의 저서《고금서평(古今書評)》에서 한나라 말기의 서예가인 최원(崔瑗)의 글씨를 평하여 처음으로 한 말이지만 추사는 그것을 원용하여 보다 더 절실한 비유로 활용하였다.

 

자, 이제 다시 추사의 마지막 작품 '판전'을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하나 필획들이 모두 기세 좋게 뻗어나간 조선 소나무의 질박한 가지와 닮지 않았는가? 추사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그가 평소에 주장한 서예이론인 '書勢如孤松一枝' 즉 '글씨의 기세는 마치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아야 한다.'는 말을 철저하게 실천한 것이다. 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 참으로 외워둠직한 한 구절이다. 특히, 예향 전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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