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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전주의 기록문화 전통, 전주체로 되살리자

조법종(우석대 사회교육과 교수)

 

전주의 역사문화적 전통 가운데 전주가 우리 역사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내용을 들라면 지식를 생산하고 전파하였던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즉, 전주는 우리나라 도시 가운데 거의 독보적으로 지식을 생산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한 전통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이러한 역사는 전주에 수도를 정한 후백제왕 견훤으로까지 소급된다. 견훤은 강력한 군사력에 근거한 후삼국 통일의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었다. 특히, 후삼국의 통일 수도 전주를 가장 수준 높은 학문의 도시로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후기 학자인 이덕무의 글에 우리나라 서적이 당한 참변을 소개한 내용에서 확인된다.

 

이덕무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많은 책이 있었는데 여러 사건으로 책들이 사라졌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서적이 당한 최대 참변 두가지가 있는 데 첫 번째 사건은 당나라 장수 이적이 고구려를 붕괴시키고 평양성에 이르렀을 때 고구려의 문화수준이 당나라와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에 깜짝 놀라 고구려의 모든 책을 평양성에 모아 불태워버린 것이고, 두 번째 책이 당한 참변은 후백제왕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하고 삼국의 모든 책을 전주에 모았는 데 후백제가 망하는 날 그 책들이 모두 불탔다. 이것이 우리나라 책이 당한 최대 참변 두 번째 사건이다."라고 하였다.

 

견훤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무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문화수도로서의 기능을 전주가 하도록 많은 인재와 삼국에 흩어진 수많은 책들을 전주에 모았고 또 많은 책들을 간행하였다. 그 전통이 연결되어 전주의 한지가 유명하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전주의 기록문화전통은 고려시대에도 각종 책들이 이곳에서 간행되었고 특히,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각종 서적이 간행되어 완영본이란 책이 유포되고 조선후기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민간서적 출판도시로서 자리잡았다. 즉, 우리나라 서민 대중들에게 책을 읽게하는 결정적 역할을 전주가 하였던 것이다.

 

조선후기 많은 백성들이 판소리를 즐겨 들었는데 이들 소리꾼의 이야기가 채록되어 소설 형식으로 정리되어 전주천 근처의 서방들에서 한글본 고전소설 즉,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흥부전 등 다채로운 완판본 고전소설들이 목판인쇄본으로 전주에서 만들어져 전국에 팔려나간 출판문화의 도시로서 전주가 자리하였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렇게 전국에 퍼진 완판본 글자를 활용해 초기 가톨릭 교리서가 만들어졌고 개신교의 납활자본 한글 성경의 글꼴이 만들어졌다는 한글 글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이들 글꼴이 독립신문 글꼴로 이어졌으며 근대적 한글 글꼴의 원형이 되어 우리나라 활판 글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일본인들이 만든 명조체, 고딕체 등 수입 글꼴이 대규모로 사용되면서 이러한 전통의 맥이 단절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전주의 한글 목판글자의 전통은 우리나라 한글 글꼴 특히, 서민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대중적인 글꼴의 원형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지식문화 전통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이같은 완판본 목판 글자체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전주체' 글꼴을 만들자는 논의가 제기되었는데 현재까지 어떤 성과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없다. 이미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던 서울에서는 서울체로서 한강체, 남산체 등 결과물들이 나왔지만 전주에서는 아직도 글꼴 제작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더 늦기전에 조선의 백성에게 글을 읽게하고 깨우쳤던 전주의 글꼴을 되살린 전주체를 만들어 최근 논란이 된 한옥마을의 간판 글꼴로도 활용하고, 전주를 대표하는 공문서, 공공시설 글꼴로 자리잡게 하여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도시의 품격을 고양시킬 것을 요청한다.

 

/ 조법종(우석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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